장님들이 제각기 코끼리 몸의 한 부분만을 만져 보고는 자기가 만진 부분이 코끼리라고 우기는 이야기가 있다. 꼬리를 만져 본 장님은 코끼리가 '밧줄과 같다'고 하고, 다리를 만져 보고 '기둥과 같다', 옆구리를 만져 보고 '벽과 같다', 코를 만져 보고 '부드럽고 굵은 대롱과 같다', 그리고 상아를 만져 보고는 '창과 같다'고 한다. 자기가 만져 본 것이 코끼리 몸의 일부분인 줄 모르고 코끼리를 다 아는 것처럼 주장한다. 아무도 코끼리를 제대로 모르면서 자기만이 코끼리를 바르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는 옳고 다른 장님은 다 틀렸다고 한다. 심지어는 발전한 의료기술 덕분에 개안수술(開眼手術)을 받고 눈을 떠서 코끼리의 모습을 제대로 본 장님이 코끼리의 참모습을 이야기해 주어도 듣지 않고 오히려 눈을 뜬 장님보고 틀렸다 하고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고집부리는 장님마저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장님세계에 사는 장님들은 코끼리를 만져 본 적이 없어 코끼리를 알지도 못하면서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거나 자기의 취향에 맞는 장님에게로 모여들어 派를 만든다. 그리고는 서로 자기 派가 맞고 다른 派는 틀렸다고 하면서 싸운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장님들은 자기가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른다. 다른 장님에게 자기 주장을 하지만 자기확신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는 의문의심과 번뇌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옳고 다른 장님은 틀렸다고 하면서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제각기 경험한 것에서 형성된 자기만의 기준 잣대를 들이대어 그 기준에 맞으면 받아들이고 맞지 않으면 배척한다. 옳으니 그르니 시비분별(是非分別)에 끝이 없고 대립ㆍ갈등이 끊이질 않는다. 이와 같은 일들은 각자가 자기가 경험한 것만 알고 있고, 그 관념 속에 갇혀(묶여)있기 때문이다.
이 장님들은 지혜도 없다. 눈을 뜬 장님은 코끼리가 덩치가 크고 힘이 세며 성질이 온순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코를 팔처럼 사용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코끼리를 길들여 무거운 짐을 운반하도록 하면 되겠다는 지혜를 가지게 되었다. 만일 다른 장님들이 자기의 관념을 벗어 던지고 눈뜬 장님의 말을 받아들였다면 그와 같은 지혜를 터득하게 되었을 것이다. 마음을 열고 다른 장님의 주장을 하나하나 귀담아 듣기라도 했더라면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대충 코끼리가 어떠하리라고 짐작할 수가 있고 자기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을 사는 우리는 어떠한가? 태어나 살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서 형성된 좁디 좁은 자기의 관념 속에 갇혀 있는 줄도 모르고, 또 수많은 의문 의심 속에 있으면서도 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고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아는 것이 많고 잘났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내세우며 살고 있지나 않는지. 나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시비분별을 하고 번뇌 지으며 자기중심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