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 이어 모란과 벚꽃이 피었다. 붉은 철쭉도 피었다. 뒤란의 수국은 새 잎이 푸른 구름 모양 둥실둥실 돋아났다. 꽃들이 앞다투어 피고 지는 동안 우리도 다퉜다.
“다 관두자고? 그래 끝내자, 끝내!”
지난 해 텃밭에 떨어진 씨앗들이 나비 모양의 떡잎을 달고 반가운 눈맞춤을 보내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우리는 눈가에 가시를 돋군 체, 양수가 터지고 생명의 머리끝이 보이는 그런 봄 날 앞에 무례함을 범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지기는 커녕 우매해져서 삶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 든다. 아집과 욕심, 이기심이 가슴 속에 구렁이처럼 또아리를 틀고 앉아 살아온 세월 만큼 점점 굵어지고 있는 까닭에. 나는 승부사로서의 기질이 제로다. 먼저 퍼붓고 상대방 눈치 살피다가 숨 막히는 분위기를 못 견디고 또 먼저 말 붙인다. 쓸개 없는 인간이다. 그리 될 것임을 알기에 나는 부딪치는 것을 피해서 살짝 복수를 꿈꾼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남편 몰래 몇 가지 물건들을 버렸다. 오래된 옷가지와 먼지를 뒤집어 쓴 체 책장 위에 놓여 있는 산타 모자와 헝겊 강아지---. ‘잡동사니 끌어 모으는 것도 병이라는데, 무슨 병일까?’ 남편은 없어진 것들을 두 번 다시 찾지도 않는다. 나는 유쾌해서 콧노래를 부르며 전등 갓의 먼지며 집안 벽면의 얼룩들을 닦는다. 참 덜 떨어진 인간이다.
※ 거실 ※
흰 벽면의 귀퉁이에 눈금이 표시되어 있고 조그만 글씨들이 써 있다.
2003년 8월 20일, 2004년 02월 04일, 2005년 7월 15일---
아들의 키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난 흔적이다. 우와, 한 달만에 삼 센티나 자랐네? 아들이 킥킥 웃었다. 뒷꿈치를 살짝 들고 있었다. 야아, 장난치지 말고--- 발꿈치를 내린 아들은 이번엔 턱을 앞으로 쭉 내밀고 목을 있는 대로 늘이고 난리다. 막 클 때는 정말 콩나물처럼 쑥쑥 자랐는데 어느 날부턴가 제자리 걸음이었다. 그래도 나는 아들이 실망할까봐 조금 컸다고 눈금을 올려 그었는데, 눈치 챈 아들이 당당하게 말했다.
“왜 꼭 키가 커야만 하지? 키가 크면 심장에 엄청 무리가 오거든. 아담한 내 키가 좋아.”
나는 그 곳에 청소용 스프레이를 뿌리고 수세미로 닦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인다.
흔적을 지우고 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 목욕실 ※
내가 보듬고 살았던 내 집의 허물은 오픈 홈을 앞두고 큰 결함으로 도드라졌다. 세면대 타일이 몇 개 금이 갔다. 금 간 타일 위에 스티커를 붙였다. 불가사리와 조개 그림이 오히려 생뚱맞다.
‘그래도 좀 가려지지 않나? 속이려는 건 아니지? 글쎄, 흠을 덮는 거랑 속이는 거랑 좀 모호하군.내가 세상에서 제일 바보다, 그러고 살기로 했잖아. 흠을 덮어도 모두 다 알아 차릴 거야. 단지 허물을 감싸 줄 사람을 만나면 되는 거지.’
※ 고양이 방 ※
차고 안 쪽, 도둑 고양이들이 몰래 숨어드는 그 방은 유산(?)이 보존되어 있다. 언젠가는 다시 통독해보리라고 벼르는 세계문학과 사상전집은 늙어서 곰팡내가 난다. 하지만 금박 제목만은 현자의 눈빛처럼 형형해서 나를 각성케 한다.
강박관념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ENGLISH. 한 세대를 풍미했던 영어 강사의 테잎에서부터 영문법, 숙어집, 단어장, 365영어 등 종류도 다양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처음부터 끝까지 뗀 것이 없다. ‘언젠가는 꼭 정복하고 말리라’ 결심하지만 버벅대던 영어가 답답했던 어느 날 고작 몇 장씩 들춰본 게 전부다.
상자 안에 꼭꼭 숨겨져 있는 이건 또 뭐지? 파일과 서류들이 한 묶음 들어 있다. 사원 훈련 강령, 신입 사원 오리엔테이션 지침서, 회의록 등 남편이 20여년 근무했던 직장의 흔적들이다. 명퇴자들은 양복과 넥타이 차림으로 집을 나갔다. 이웃보기 창피하고 놀고 있는 게 어색해서. 산 밑에서 등산복으로 갈아 입고 산에 올랐다 내려와선 다시 양복으로 갈아 입고 퇴근을 했다. 남편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일 할 수 있어서 행복했던 시간들이 담겨 있는 상자를 남편은 가끔 열어보리라.
‘내 청 장년기의 시간들이여, 아직 여기 있구나!’
고양이 방에 들어가면 누구나 오래 머무르게 된다. 세월을 반추하고 추억을 반추하느라.
헤어져야 하는 사물들에는 애틋함과 회한이 배어 있다. 이민와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차의 임종시 나는 차마 가지 못 하고 남편이 혼백을 거두었다. 본넷 칠이 훌러덩 벗겨진 대머리에 덜덜 떨리는 중풍에 호흡 기능마저 떨어져 시커먼 매연을 내뿜고 배설 기관도 문제가 생겨 엔진 오일이 질질 새곤 했던 내 차. 애물단지라도 헤어지면 그리워진다.
잡초 뽑는 일이 힘겨워 구박했던 내 집도 돌아보니 요모조모 감동이 묻어 난다. 왜 7년만에 절절이 깨닫는 것일까? 우리 가족과 시난고난 살면서, 너절한 생활의 군때가 묻어 있던 내 집. 오픈 홈을 위해 새색시처럼 꽃단장 해 놓으니 가슴 설레게 아름답다. 하늘은 인연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인연이 없는 집과 사람도 만날 수 없으리라. 하물며 7년 세월임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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