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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2009. 14:26 코리아포스트 (122.♡.149.251)
아내가 오클랜드에 있는 딸에게 전화를 했다.
"너 이번 주말에 올 때 한국 슈퍼마켓에 가서 부르스타 좀 사와라~ 토요일 저녁에 손님을 초대를 했는데 월남 쌈을 먹기로 했어, 그런데 두 곳에서 고기 국을 끓여야 하는데 브르스타가 떨어 졌어, 브르스타 꼭 사와라~"
나는 웬만하면 참견을 안 하려고 마음먹고 사는데 딸이 정말 브르스타를 사 올 것만 같아 참견을 하고 말았다.
"아, 브르스타는 휴대용 가스렌지이고 거기에 사용하는 가스가 부탄가스인데 부탄가스가 떨어진 것 아냐? 그러면 부탄가스를 사오라고 해야지, 브르스타를 또 사오면 고기국물울 어떻게 끓여~ 어휴 답답해~~ 다음부턴 안 알려줘, 국물도 없을 줄 알아~"
내 말에 아내가 신경질을 부리며 목소리가 커져 버린다.
"근데 왜 당신 화를 내고 그래~ 부드럽게 가르쳐주면 어디가 덧나?"
부드럽게 말 할게 따로 있지, 제길~ 딸은 이번 주말에 못 온다고 했다. 오느냐 안 오느냐 부터 물어보고 브르스탄지 부탄가슨지 얘기를 꺼내는 게 순서가 아닌지...
다음날 아내는 아들보고 시내에서 브르스타를 사오라고 말을 하는데 아들은 시간이 없어서 못 사온다고 말 하였다. 내가 또 언성을 높이며 힘들게 부탄가스라고 또 고쳐 줄 필요가 없어서 참 다행스러웠다.
토요일 오전에 아내가 시내 키위 가게에 가서 부탄가스를 사 가지고 와서 깔깔거리며 말했다.
"내가 브르스타를 달라고 했더니 정말 가스렌지를 주더라고, 호호호~~"
우리 집에 처음 찾아오는 손님들은 거의 다 30분 내지 1시간 정도씩 지각을 한다.
한국 손님들이 코리언 타임이라 그런 게 아니라 아내가 약도를 헷갈리게 가르쳐 주기 때문인 것이다. 키위들이야 주소만 가지고도 잘 찾아오지만 교포들에게는 약간의 도로 설명을 해주면 되는데 아내는 보통 10분 이상 설명을 해준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헷갈리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전화거는 아내 옆에서 듣는 내가 하도 답답해 참견을 하면 참견을 한다고 성질을 부리며 아예 다른 방에 들어가서 한 참 동안 약도를 설명 해주고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나온다.
"고블 고블한 길이 나오는데 그 길을 그냥 따라 오고 또 언덕길이 나오거든 언덕길을 올라가면 또 내려가는 길이 나와 "아내는 이런 식으로 길의 형태나 모양까지 자상하게 설명을 해주는데 그런 길 모양은 어디를 가나 다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 헷갈리는 것은 당연하다.
"조금만 더 오면 한전이 보여, 한전을 지나 돌아가는 길이 있는데 조금 더 오면 빨간 우체통이 보여, 그 집이 우리 집이야~"
우리 동네에 있는 전력회사를 아내는 한전이라고 부른다. 여긴 뉴질랜드이니 뉴전이라고 내가 몇 번을 가르쳐 줘도 항상 한전이라고 부른다.
토요일 날 연이네 가족은 예정 시간보다 40분 정도 늦게 우리 집에 도착했다.
내가 연이 아빠에게 우리 집을 찾느라고 고생 많이 했지 하고 물었다.
"아뇨, 조금밖에 안 헤맸어요. 근데 빨간 우체통이 안보여서 좀..."
우리 집이 뭐 번지 없는 주막도 아니고 번지수만 가르쳐 주면 되는데 아내는 항상 빨간 우체통이라고 말을 한다. 4년 전 우체통 지붕에 칠해놓은 빨간색은 이미 다 바래버려 나무색 밖에 안 보이는데...
아내에게 빨간 우체통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고쳐지지 않으니 천상 내가 다시 우체통 지붕을 빨간색으로 칠해 놓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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