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Home ; 첫 번째 이야기

Open Home ;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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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오는 소리,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집을 내놓기로 했다. 한국에 있을 때, 구조가 모두 똑같고 가격대도 고만고만한 아파트만 두 어 번 거래 해 봤다. 쉽게 사고 팔렸다. 뉴질랜드에서 집을 사려고 open home을 쫓아다닐 때 나는 그로기 상태가 되었다. 집이 없었다. 매물은 많지만 정작 나와 조건이 맞는 집다운 집은 드물었다. 뉴질랜드 건축 인허가는 돈과 시간 킬러이고 까다롭기 그지 없다. 그런데 누수 문제는 왜 그리 심각한가? 위치도 좋고 실 평수도 넓어 맘에 들었던 아파트가 누수 건물이었다. 우연히 만난 지인의 귀띔에 나는 가슴을 쓸어 내렸었다. 하마터면 계약할 뻔 했는데---.

겨우겨우 중국 신문까지 싹 뒤져서 찾아낸 hidden treasure를 얻고 나서 나는 앓아 누웠다. 보물찾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 뉴질랜드에서 집 사는 일이다.

집을 팔 때는 어떤가. 바이어들의 눈을 혹하게 만들어라. 먼저 안과 밖을 꽃단장 해야 한다. 생활의 군내가 풀풀 나는 집은 거둬 치워라.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처럼 아무 걱정없이 행복할 수 있어요.’

show를 하기 위한 집, 환상과 희망을 담아라. 발품 파는 바이어들의 피곤함을 사르르 녹이고 영혼까지 사로잡아라.

내 친구는 오픈 홈을 위해 가구와 실내 장식품을 대여했다.달력이 걸려 있던 벽에는 대형 액자가 걸렸다. 가죽 소파는 거실 분위기를 중후하게 살렸다. 페르시안 카페트도 깔았다.집안이 전시장처럼 변했다. 그런데 소파에 앉으면 안되고 카페트도 밟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그들 네 식구는 집이 팔리는 동안 동굴 속 곰 가족처럼 골방에 오글오글 모여 지냈다. 셋팅(?) 장소에는 얼씬도 못했다.

내 집도 잡지 화보에서 쏙 빠져 나온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어디부터 손을 봐야 하나, 엄두가 나지 않지만 open home을 위하여!

* 선룸 *

햇살이 레이저 빔처럼 쳐들어오는 날, 선룸은 열대 지방이다. 그곳에서 차를 마신다거나 책을 읽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지만 빨래 하나는 기막히게 잘 말랐다. 눅눅한 물건이 있으면 무조건 선룸행이다. 걸레도 널고, 눅눅해진 버섯이며 한약재도 널고 뜨락에서 자라던 야생 생강도 캐내어 썰어 말리고, 무청도 데쳐 말리고 ---. 한 바구니나 되던 생강이 말라서 두 줌 정도로 줄어들고 통통했던 무청도 실오라기처럼 변했다. 참 말리는 일이 재밌었다. 수영장에 다녀와서 몸이 눅눅할 때, 몸도 선룸에서 말렸다. 개미도 선룸이 좋은지 모여들었다. 안됐지만 개미약을 놓았고, 죽은 개미 시체도 까맣게 말라 갔다.그러니 선룸이 얼마나 버라이어티하게 아수라장이겠는가. 휴우, 이걸 다 어쩐담. 나는 우선 빨랫대에 너절너절 걸린 온갖 빨래들을 거뒀다. 빨랫대를 접고 나니 한결 공간이 넓어졌다. 그리고 청소기로 개미 시체와 먼지들을 빨아들였다. 와우,깨끗해졌다. 조그만 나무 테이블을 놓고, 토끼와 당근이 프린트 된 테이블 보를 덮고 찻잔을 셋팅했다. 그래, 내가 원했던 선룸도 바로 이거였다. 근데 이 빨래들과 말리다가 만 무말랭이 쪼가리들은 어쩐담? 생활과 이상, 생활과 오픈홈과의 괴리감!

* 정원 *

남편 친구를 초빙해서 정원 관리에 들어갔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텃밭에서 이리 저리 어울려 자라던 아욱, 참나물, 치커리, 쑥갓 등이 송두리째 뽑혀 나갔다. 말린 새우를 넣고 끓인 아욱국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니, 좀 슬픈데, 타박까지 들었다. 그 녀석들 잘 자라라고 내가 파 묻었던 음식물 거름 때문에.

“아유 파리, 아유 냄새!”

정원의 풀과 나무 등은 대부분 뽑히고 잘렸다. 깔끔하게 정리되긴 했다. 달도 별도 없는 어두운 밤. 아들이 정원 한 구석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들이 씨앗부터 발아시켜 애지중지 키우다가 밭에 옮겨 심은 아보카도며 망고, 자두 등이 모두 희생된 정원이다. 나는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쩌겠니 오픈 홈을 해야 하는데---.”

밤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고 비가 크게 오려는지 지독히도 눅눅한 바람이 온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 창고 *

내 집 창고에는 장어나 게를 잡는 망이 다섯 개도 넘게 걸려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별 필요가 없는 긴 무스탕 코트와 두꺼운 모직 코트도 벽에 걸려 있다. 남편의 지인들이 짐을 정리하다가 준 것들을 남편은 버리지 못한다. 우리 집은 착한 천사의 구호 물품 센터처럼 변했다. 서울에서 동생이 보내 준 비디오 테이프도 수 백 개 보관되어 있다. 집착을 끊지 못하면 정리가 되지 않는다. 나와 남편은 ‘버려라, 못 버린다’ 하면서 실랑이다. 두꺼운 패딩 점퍼류는 10여 개쯤 되는데---,

“갖다 주자, 중고숍에!”

“낚시 갈 때 입으면 좋다니까---”

“제발 필요 없는 건 버리자고요! 비디오 테잎도 다 버려야 해.”

“그래도--- 영은이가 정성껏 떠서 보내준 건데, 어떻게 버리나---”

“다 끌어 안고 살아! 도저히 정리가 안되잖아. 오픈 홈이고 뭐고 다 관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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