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에게도 만족하고, 더 나아가서 자신의 존재를 남의로부터 인정도 받고 인생의 무대에서 화려한 각광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소망과는 달리 평생 밑바닥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늘진 생활로 일생이 끝나 버리는 수도 있다. 그럴 때 내 인생은 왜 이런가 자책하게 된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아야 하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찾아온다면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기 보다는 주위에 있는 식물의 모습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백합이나 글라디올러스는 꽃이 활짝 피었을 때 영양이 구근(球根)에 모이게 하기 위해서 꽃을 꺾어 버린다. 또 고쳐 심을 때에는 비료를 너무 많이 주면 무정(無情)이 되기 때문에 내버려 두는 것이다.
삼목(杉木)은 이끼가 없으면 자라지 않는다. 그 이끼에 직사광선을 너무 많이 직접 쪼이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삼목의 잎이 이끼를 광선에서 지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끼는 삼목 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물을 자양으로 해서 자라고 그러면서 삼목에게 물을 공급한다. 삼목과 이끼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생의 존재들이다.
우리 몸에 달린 새끼손가락 역시 평상시에는 그 역할을 그리 크게 의식하지 못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만일 새끼손가락 없다면 망치질을 할 수 없고 야구를 할 적에도 볼을 던질 수 없다. 물구나무를 설 적에도 새끼 손가락이 없으면 밸런스를 잡을 수 없어서 쓰러지고 말게 된다. 이 새끼손가락의 존재감을 허술히 여기다면 그것이 없어 보아야 비로소 그 존재가치를 알게 된다.
천지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잘 조화가 잡혀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이와 같아서 각기 자기 몫을 차지하고 서로 상의 상관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서로가 서로를 제쳐놓고 자기주장만 하려고 들며, 자기만 눈에 뜨이려고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톱니바퀴가 서로 어긋나듯 대립하게 되어 하루도 자연스러운 운행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더욱더 밑바닥 생활을 하게 되고 그늘의 존재가 되었다 해도 그것을 원망할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은 “광신자는 자기만이 잘났다 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위사람과 마찰을 일으키기 쉽다. 때로는 사소한 일로 입씨름을 하며 싸우고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것은 신(神)에 대한 겸허를 잊어버린 자의 과신(過信)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역시 무의식 중에 자기 우월감에 사로잡혀 공주병이 되고, 제왕 병에 걸려 주위를 패악을 끼친다.
누구나 <내 생각대로 하고 싶다>든지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를 바란다>든지 하는 욕망을 갖고 있지만 그런 기분을 억제하지 못하는 자는 야수나 다름이 없다. <내가 지나친 말을 하지 않았는가>하는 자기 반성하는 마음이 솟아오르지 않으면 자신과 남을 위한 평안의 인생을 살 수 없다.
언제나 입씨름만 하고 있는 집의 주인이 옆집은 어떻게 해서 가족들이 오순도순 사랑으로 사이좋게 지내는지 그 비결을 물으러 갔다. 그랬더니 옆집 주인 하는 말이 <우리 집은 나쁜 사람만 모여 있어서 싸움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엉터리 대답에 분개하여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집에서 자전거 도둑을 맞고 소동이 난 것을 보고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엿들어 보니 <현관문을 잠그지 않은 내가 나빴어요>하니 <아니 자물쇠를 잠그지 않은 내가 잘못 했어요> <아냐 내가 자전거를 거기다 놓아둔 게 나빴어요>하고 모두 자기가 잘못한 것만 말하 는 것이었다. 그것을 듣고 비로소 자기의 비(非)를 깨닫고 그 후로는 절대로 남을 욕하거나 상대방을 슬프게 하지 않으리라고 맹세했다는 것이다.
경전에 “나쁜 것은 나에게, 좋은 것은 남에게 주라. 나를 잊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은 자비의 극(極)이니라”는 말씀이 있다. 이것을 실행하지 못하면 자신의 밝은 미래가 없다. 그러나 이것을 실행함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자신의 존재가 없어져도 그 구성원들이 아무런 불편이나 필요성을 못 느낀다면 얼마나 인생을 헛 살았는가?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마음씀과 행동이 얼마나 어려운가? 나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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