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가족들이 있는 안락한 집을 떠나 황량하고 메마르며 찌는 듯이 무더운 사막에서 굶주림과 목마름을 견디며 49일간 단식 기도를 하였다. 석가모니도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한 나라의 왕자자리를 마다하고 처자식을 다 버리고 보리수 나무 아래서 굶주림과 비바람을 견뎌 내며 6년간 고행을 하였다.
예수님은 마귀가 온 세상을 보여 주고 그에게 절을 하면 온 세상을 주겠다고 유혹하였다. 예수님은 이것을 단호하게 물리쳤다. 온 세상을 가지게 되면 온 세상의 왕으로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다 가지게 되지만 모두 물리쳤다. 그것도 인간이 인내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극도의 배고픔과 목마름, 한낮의 가마솥 같은 더위와 밤중의 살을 애는 추위 속에서였다. 석가모니는 보리수 나무아래서 수행할 때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과 맛있는 음식과 진귀한 술의 유혹, 그리고 휘황찬란한 보석의 유혹을 모두 물리쳤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극한상황에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인 색욕(色慾)과 식욕(食慾)과 물욕(物慾)을 다 물리쳤다. 한 때 세상살이 하면서 탐닉했을 달콤한 유혹을 단호히 물리쳤다.
예수님은 처자와 전토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였고 계명을 다 지켰다는 부자젊은이에게 가진 재산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주라고 하였다. 전도여행(傳導旅行)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입은 옷 한 벌 걸치고 지팡이와 밥그릇 하나만 들고 가도록 하였다. 사람들에게 부자가 천국 가기가 어렵고 마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을 가진다고 가르쳤다. 죽음에 임박하여서는 ‘죽음의 잔을 거두어 주소서...제 뜻대로 하지 말고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하고 내 뜻을 버렸다. 그리고 목숨을 내놓아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하는 나도 버렸다.
석가모니도 스스로 하루에 쌀 한 톨과 물 한 모금으로 연명하는 극한의 고행을 통하여 육신이 목숨을 부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조차도 넘어감으로써 육신을 벗어나고(버리고) 세상의 욕심과 집착을 다 버렸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깨치게 하는데 자기의 삶을 바쳤다. 인간의 이기적인 삶을 넘어서서(이기적인 삶을 살았던 나를 없애고) 남을 위해 살았다. 그리고 일체를 버리고 찾아오는 사람만 제자로 삼았다.
성현들이 보여 준 삶은 일체를 버리는 것이었다. 가진 것을 다 버리고 가진 마음도 버리고 몸마저 버리고 목숨마저 남을 위해 다 내 놓았다. 세상사람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것, 꼭 부여잡고 놓지 못하는 것을 다 버렸다. 그리고 자기마저 다 버렸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그러한 것들에 (마음이) 머물고 자기를 가진 ‘채로는(마음으로는)’ 천국에 나서 영생을 얻지 못하고, 극락에서 생사일여(生死一如)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성현들이 삶을 통해 세상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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