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밤 줏으러 갔다네

왕 밤 줏으러 갔다네

0 개 2,355 코리아포스트
무엇을 그리도 두려워해서일까? 그 누구도 침범 못하게 단란한 가시로 무장을 하고 의좋게 달라붙어 꼭꼭 숨은 삼형제일까 삼자매일까? 윤끼 자르르한 갈색으로 매끈하지만 딱딱한 껍질 속에 또 한겹 떫은 속옷으로 몸을 감싼 모습이야말로 굳건히 순결을 지키려는 옛 처녀들의 수줍음이 묻어나 그들은 형제가 아니라 자매임이 틀림없을것만 같다. 알을 깨고 방금 나온 햇병아리들처럼 세상 구경에 나선 알밤 삼자매 자매들.... 그들을 만나러 떠나 보련다.

부지런하고 수고하지 않으면 함부로 먹을 수 없는 햇밤.

도둑고양이 매 맞듯이 옛이나 지금이나 늦잠복 하나는 타고난 탓으로 모처럼의 이른 기상이 걱정이었다. 새벽밥을 짓는 "정옥"씨의 다섯시 반 기상 시간에 나도 깨워 달라고 부탁을 하는 수 밖에....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영 잠이 오지 않는다. 소풍가기 전날 들떴던 어린애 마음으로 돌아간걸까?(늙으면 애 된다더니-) 깊은잠이 들지 않았던 탓일께다. 신호가 오기도전에 또 잠이 깨었다. 불을 켜고 시계를 보니 네시 반, 이제 다시 잠들면 어렵다는 걸 아니 아예 일어나 버리는데 문득 어젯밤 꿈이 생각났다.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꿈이었으니 주먹만한 왕밤이나 하나 줏으려나? 그러나 혼자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런 행운을 얻어 본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밖이 어렴풋이 밝아오자 미리 열어 놓은 현관문 밖에 무거운 발자욱소리, 보나마나 가시박힌 밤을 무자비하게 까뭉기려고 두툼한 등산화를 신고 나타났음을 짐작으로 알만한 동행할 친구였다.

"그런데 틀렸네요 비가 오네요" 그의 첫마디 말이었다.(웬 김빠지는 소리?) 밖을 내다보니 착 갈아 앉은 하늘에서 촉촉하게 봄비같은 실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깨에 힘이 빠지고 준비하는 마음이 시들해졌다. 작년에도 시티까지 나갔다가 헛걸음을 하고 되돌아와야만 했던 씁쓸한 기억이 있질 않은가. 비 때문에.... 이른 시간 직장에 나가는 "정옥"씨 자제분 차에 픽업을 약속한 터라 우선 친구의 집까지 뽀얀 빗속을 달리는데 오늘 틀렸다고 계속 군시렁대는 친구를 어찌해야 할지 자신이 없다.(비가 이 지경으로 계속 내릴것만 같은데, 혹시나 개어 줄 것인지? 가는데까지 가보자)

그러나 정옥씨 내외와 만난 우리 네 사람은 케쎄라쎄라를 부르면서 편안한 배짱으로 8시에 약속장소인 "스카이 시티"에 도착했다. 한 시간이나 이른 시간이어서 까페에 들어가 모닝커피 한잔씩을 즐기는 여유까지 한껏 맛을 냈으니 이만하면 밤 농장에 못 가도 그리 억울한 날은 아니잖은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비가 멈추어 주었다.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조금씩 파아랗게 열려 왔다.

언제 비 걱정을 했느냐는 듯 모여드는 얼굴, 얼굴들이 한결같이 화사하고 들떠 있었다. 버스가 꽉차는 동안 오랜만 에 만나는 얼굴들과 만나면서 반가운 분위기로 차안이 화끈하게 달아 올랐다.

노오랗게 물들어 가는 나무들과 깃털처럼 나부끼는 갈대들의 군무를 차창으로 내다보면서 여물어가는 뉴질랜드의 가을을 여과없이 받아 드린다. 감을 익히고 알밤을 떨구는 그런 골 깊은 가을을....

예정된 도착시간 훨씬 전에 목적지에 이르렀다. "재뉴 한국 여성회 왕밤 컨테스트" 우리말 플랜카드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먼저 와 계신 참전 용사 가족들과 인원이 넘쳐서 작은 차까지 동원되어 모셔진 분들로 벌써 와 있어 잔치집처럼 사람들로 넘쳐 나는 밤 밭 너른 마당. 큼직한 차일 밑에 봉사자들 일손들이 바쁘다.

현지 "와이카토" 한인 회장과 그곳 유지분들이 함께 오늘의 수고를 맡으셨나 보다. 푸른 들판에 고운 빛깔 한복이 돋보이는 "한국학교" 교장인 "고정미" 선생님의 사회로 대회는 시작되었고 성질 급한 몇몇 분들은 벌써 밤나무 밑에 흩어져 밤 줍기가 바쁘다. 자연이 내리신 선물. 알차게 여문 밤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꿈자리도 좋았으니 어디 왕밤이나 찾아나서 볼까?

이역의 땅. 외진 시골 농장. 나무들 사이로 흩어져 들려 오는 사물놀이의 징. 장구소리에 가슴을 울렁이며 밤을 줏어 담는다.(왕밤 나와라 오바) 외우는 주문을 들었을까? 와 얼마나 살이 쪘는지 껍질을 터뜨리고 살집을 드러낸 제법 큰 밤을 찾아냈다. 자신있게 본부석에 접수를 해 보았지만 일. 이등은 놓치고 "앗차"하고 떨어져서 앗차 상인가. 그래도 꿈 값은 되는 모양이다.

오늘 점심은 유난히 맛이 있었다. 많이 주었다고 투정을 하던 분들도 말끔히 그릇을 비웠다. 봉사하시는 분들의 성의가 값진 양념으로 더해진 까닭을 모를리 없어 고맙고 보람된 하루였다. 들바람에 치마자락 흣날리며 부채춤을 추는 여학생들, 따가운 햇살아래 정겹고 아름다운 이색적인 한폭의 풍경화였다. 느린 걸음걸이 구부정한 몸매, 얼굴 곱게 화장을 하고 여인이기를 고집했어도 어쩔 수 없는 우리. 그러기에 오늘같이 대우받는 날도 있는 모양이다.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재뉴 한국 여성회의 발전을 빌면서-----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Hot
2009.04.29

I am packed

코리아포스트 0    3,031
Hot
2009.04.28

유혹(誘惑)

코리아포스트 0    1,365
Hot
2009.04.28

네 가지 친구!

코리아포스트 0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