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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2009. 09:52 코리아포스트 (122.♡.147.230)
걷는 것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인 우리 일행은 카우리나무 숲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숲의 촉촉한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셨다. 새로 생긴 인공 조림지들과는 달리 수백만 년 동안 이어져 온 와이포우아 숲은 오래된 적포도주 향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깊고 안정된 기운을 내뿜는다. 숲은 송곳처럼 날카로운 마음을 둥글게 하고 스트레스도 누그러뜨린다. 자연이 주는 풍요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한다. 와이포우아 숲 속은 바닥의 이끼부터 하늘을 찌르는 듯한 나무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다채롭다. 울창한 나뭇잎 틈새로 햇빛이 흔들리며 친근하게 따라온다. 숲 속을 걸으며 눈길 닿는 대로 주변을 살펴보면 수천 종의 나무들과 넝쿨들이 무질서하게 엉켜 있는데, 그 속에 정교한 질서가 있다.
그 질서의 시작은 바로 타네마후타(Tane Mahuta: God of forest)라는 카우리나무다. 2000년이 넘도록 살았기 때문에 이 땅에 마오리 족이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숲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낳았다는 전설을 갖고 있기도 하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면서 가장 크고 무거운 생명체인 17층 건물 높이의 타네마후타의 위용에 모두 놀라 외마디 감탄사를 내뱉는다.
"가로로 잘라도 20인용 식탁 100개는 나오겠다."
"저런 나무 자르면 제명에 못 죽을걸?"
"내가 단지 나무 한 그루를 보고 이렇게 감격하다니."
"이 싹이 돋았을 때가 삼국시대가 막 시작될 때여."
왕가레이에서 두 번째 낚시 도전
뉴질랜드에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이 많다. 와이포우아 숲도 그런 곳이라 숲을 나와서 작은 마을에 접어들자 상석에게서 온 문자가 뒤늦게 울렸다. 오늘 저녁 물때가 좋으니 낚시를 한 번 더 가자는 내용이다. 만장일치로 왕가레이로 향했다. 멀미가 날 정도로 꼬불꼬불한 12번 도로를 부리나케 지나 왕가레이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도 30분을 더 들어가 한적한 부두 위를 보니 상석이 이미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다. 며칠 전에 한치 두 마리로 허탕을 친 곳인데 과연 다시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상석의 경험에서 나오는 육감은 정확했다. 초반에는 거의 고기가 물지 않아 포기하고 돌아가려 했는데, 해가 저물고 날이 어두워 지면서 점점 입질이 늘더니 자정이 가까워지자 낚싯대가 크게 휘지며 줄이 끊어지기 두어 번.
결과부터 말하자면 박영석 대장이 드디어 사고를 쳤다. 박영석 대장의 15kg짜리(한국에서는 무척 두꺼운 줄이지만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얇은 줄에 속한다) 낚싯줄에 뭔가 무시무시한 놈이 걸린 것이다. 낮의 피곤과 바다모기에 물려 시름시름 하던 일행 모두 깜짝 놀라 박영석 대장에게 다가갔다. 낚싯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당기고 미는 사투를 30분 남짓 하고 있을 때, 하얀 지느러미 밑이 펄럭거리며 어둠 속에서 뭔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자 봉주 형님이 소리르 지른다.
"저저저....저거.... 엄청난 가오리다."
이때부터가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낚싯줄은 길게 늘어지지 않고 탄력이 없기 때문에 덩치 큰 가오리가 단 한 번 몸부림을 쳐도 줄이 끊어질 수 있다. 하지만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박영석 대장의 끈질기고 집요한 릴 감기로 전세는 가오리에서 박영석 대장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따라오지 않으려고 수면을 철퍽대는 가오리와 매콤한 가오리찜에 군침을 흘리는 우리들과의 전쟁은 결국 우리의 승리로 끝이 났다.
허영만 화백과 박영석 대장은 가오리 꼬리 어디엔가 독침이 있으니 우선 꼬리 먼저 칼로 잘라야 한다고 하고, 그러다 공격당할 수도 있으니 완전히 죽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 꼬리를 자르자는 의견도 있었다. 결국 가오리 등에서 급소일 것 같은 부분을 상석이 찔러 죽인 후, 꼬리를 자르고서야 가오리 낚시는 결말을 맺었다. 우리 일행은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뿌듯함을 느끼며 오늘 일정을 끝마치기로 했다.
낚시 가방에는 오늘 잡은 한치, 도미, 바닷장어가 들어 있고, 그 옆에는 50명이 먹고도 남을 가오리 한 마리가 가방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커다란 교자상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은 수 없다! 혹시나 뉴질랜드에서 우리 같은 행운을 만나는 사람을 위해 간단한 가오리 요리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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