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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2009. 13:36 코리아포스트 (122.♡.147.230)
뉴질랜드는 포플러 나무의 낙엽이 지기 시작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로 접어드는데 한국은 개나리 피고 버들피리 꺾어 부는 봄이 왔다는군요.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부는 쓸쓸한 우리 집에 한국에서 봄소식을 듬뿍 안은 봄 처녀가 왔습니다.
몇 달 전 결혼한 외손자 색시가 사 주었다는 꽃 분홍 샤스를 입은 우리 어머니는 그네도 잘 타시고 풀밭에서 나물도 잘 캐시니 영락없는 봄 처녀입니다.
하루에 몇 번씩 잔디밭을 전동차로 드라이브 하다가 그네 있는 곳에서는 그네도 타고, 닭장에서는 달걀도 꺼내오고, 텃밭에서는 깻잎도 따고 고춧잎도 따고...
그런데 봄 처녀가 많이 늙긴 늙으셨더군요. 몇 년 전 뉴질랜드에 와서 몇 달 계실 때엔 아들 밥도 잘 차려주고, 라면도 잘 끓여 주고 커피도 타주곤 했는데 지금은 아들이 다 챙겨 줘야 합니다. 생선을 좋아하시니 낚시 가서 고기도 잡아다 드리고...
그러나 봄 처녀 때문에 반찬은 많이 늘었습니다. 민들레도 무치고 돌미나리도 삶아 무치고, 고춧잎도 무치고, 무우잎을 삶아 시레기 국도 끓이고 뉴질랜드는 봄 처녀 살기가 딱 좋은 곳이로군요. 겨울에도 풀이 자라니 항상 나물을 캘 수 있으니까요, 재작년에 내가 한국 갔을 때 전동차를 사 드렸는데 뉴질랜드 오실 때 가져온다고 말씀 하셨는데 마침 한국에서 이삿짐 부치는 사람이 있어 그 편에 가져왔습니다.
차고에 넣어 두면 복도로 한참 걸어가야 하니까 거실 문만 열면 탈수 있게 데크에 주차시켜 놓지요.
봄 처녀는 기억력도 좋으셔서 우리 집 소가 몇 마리 닭이 몇 마리 금붕어, 거북이까지 기억하십니다. 예년 같으면 암탉들이 깐 병아리를 친구들에게 다 나누어 줬는데 어머니가 계시니 다 길러야지요. 알둥지에서 달걀 꺼내오는 재미가 솔솔 하시니...
며칠 전에 검둥이가 얼룩송아지를 낳았습니다.
"어머니~ 소가 송아지를 낳았어요.~" 어머니는 신이 나서 전동차를 타고 송아지를 보러 갔습니다.
"얘야, 이젠 소가 4마리 됐다. 부자다~ 호호호."
크큭, 부자지요, 송아지가 담배 1보루 값인데...
그런데 봄 처녀는 잔소리꾼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잔소리를 하는데 담배를 피우면 담배 피운다고 잔소리, 술 마시면 술 마시다고 또 잔소리, 하루에 담배 두가치만 피고 술도 2잔씩만 마시라는데 우리 집 수탉도 2잔은 먹는데 내가 덩치 값 하려면 한 병씩은 마셔야 한다니까,
"야~ 닭이 어떻게 술을 마시냐? 거짓말마라~"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수탉 두 마리가 커가면서 매일 싸움질만 하여 닭장에다 가두었습니다. 실컷 싸워 보라고...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온종일 싸우더군요. 한 마리가 꽁지를 내리면 싸움은 쉽게 끝날 텐데, 서로 막상막하다 보니 싸움이 끝날 줄을 모릅니다.
정말 저러다 한 마리 죽겠다 싶어 사료에다 소주 2잔을 부어 갔다 줬더니 잘 먹더군요. 잠시 후 가보니 수탉들은 피투성이가 된 몸을 서로 기대고 사이좋게 주저앉아 있더군요. 그 뒤로 닭들이 싸움을 안 한다니까 어머니는 깔깔깔 웃으십니다.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으며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소주 몇 잔은 더 마셔야 합니다.
밤은 깊어 가는데 늙은 봄 처녀의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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