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ENS 국제운송회사 트럭 운전사 - 김정환씨

OWENS 국제운송회사 트럭 운전사 - 김정환씨

0 개 8,045 코리아포스트
 /인/터/뷰/

뉴질랜드에 이민 온 지도 벌써 15년째, 이민생활을 하면서 내 마음 사계절과 같이 따뜻하고 추웠던 기억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 일화들을 다 말로 전하려니 막막함이 앞서기도 하고 피식 웃음부터 나온다는 크라이스트처치 교민 김정환씨. 1995년 7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처음 도착한 김씨 가족은 유난히 추웠던 날씨 탓인지 몸과 마음이 위축되었던 것 같다고 기억한다. 당시 1살이었던 큰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고국을 떠나 말도 안 통하는 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 보기 위해 이민을 결정했고, 마침 손위 처남이 이 곳에 살고 있어 큰 도움을 받기도 했다고 옛 기억을 되짚는다.

뉴질랜드에서 둘째 아이를 낳고 그렇게 이민생활은 즐겁기도, 한때는 서글픈 일들도 많았다는 김씨는 1년 반쯤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이 곳에서 하루 종일 한국 사람들만의 생활, 이 곳이 뉴질랜드인지 한국인지 혼동될 정도로 바뀌지 않은 삶 등 생활에 의미를 찾기 힘들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결정한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가서도 취직자리는 쉽지 않았고 처자식들은 먹여 살려야 했기에 한때는 막노동을 해서 생활비를 마련했던 그에게 또다시 ‘이건 아닌데……’라는 혼돈이 오기 시작했고 서슴없이 두 달 반 만에 다시 돌아왔다. 이 곳 뉴질랜드로 말이다.

이렇게 뉴질랜드로 재 이민 온 김씨 가족은 몇 주 만에 크라이스트처치로 이사 가길 결정한다. 나무의 뿌리를 뽑아서 다른 토질 다른 온도 그리고 다른 환경에서 세울 수 있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걸 느끼면서 김씨네 가족은 오클랜드를 떠나 크라이스트처치로 이동한다. 뉴질랜드에 이민와서 가진 돈은 별로 없고 영어도 못해 김씨는 제일 먼저 영어를 배우기 위해 2년 동안 학교를 다니고, 그의 부인은 지역 아트센터에서 카라벤 이라고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음식골목에 서있는 포장마차와 같이 각 나라별로 제각기 음식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음식을 팔며 생계를 이어 왔다, 이렇게 생활이 여유롭지 못해 고생도 많이 하고 여기저기 부딪히기도 했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요소들을 이기게 한 것은 바로 ‘할 수 있다’라는 신념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김씨는 말한다.

이민 초기 김씨 가족은 현지인들에게도 여러모로 큰 도움을 받았다. 영어를 못 할 때도 친절한 현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학교에서 배운 영어보다 현실에서 쓸 수 있는 영어를 더 배울 수 있었고 현지인 이웃들의 도움으로 버섯 공장에서부터 데어리, 우유 회사 트럭 운전 등 모든 것을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한국 교민들과의 만남은 거의 없었고 김씨 식구는 현지사회에 동화 되어 살고 있었다. 현재까지 김씨네 가족은 이웃 사촌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매년 크리스마스 때 마다 선물과 케이크를 사가지고 오는 이웃, 그리고 데어리를 운영 할 때 부인이 추워서 손을 불고 있었던 광경을 본 어떤 할머니는 곱게 손수 뜨신 장갑을 선물로 준 적도 있었다고 회상한다. 또 무슨 소리가 나면 먼저 뛰어 와서 아무 일 없냐고 찾아와 준 사람들을 생각 하면 지금도 가슴이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현지인 친구가 ‘4번 운전면허’로 몰수 있는 트럭운전 일을 하고 있었는데 김씨도 관심이 있어서 주중에는 우유 배달을 하고 주말에는 그 친구를 따라 다니면서 트럭운전에 대해 많은 것을 알 게 되었다. 평소에 운전을 좋아해서 관심이 많았고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든 게 부족 했지만 천천히 한 단계씩 준비를 시작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4번 운전면허’를 제일 먼저 취득하고, 그 다음 ‘dangerous good license-> fork lift-> 5번 운전면허-> good and service license을 차례대로 취득했다. 트럭운전 면허증을 취득한 후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 트럭운전회사 이 곳 저 곳을 계속 찾아가며 인터뷰도 했지만, 결국에는 답변도 받지 못하고, 심지어 답변을 받은 지역은 가족과 떨어져서 살아야만 했던 상황이고 해서 취직 자리를 구하지 못해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단다.





그 후 여러 번의 쓴맛을 경험한 김씨는 마침내 몇 년 동안 찾았던 바로 그 일을 OWENS 운송회사에서 찾게 되었다. 집에서도 출퇴근이 가능한‘LINEHAUL’일명‘SET RUN’ 이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이다. 회사 측에서는 김씨가 아시안 최초로 뉴질랜드에서 LINEHAUL 트럭운전사 일을 하게 되었다고 얘기해 주기도 했다. 김씨가 하는 일은 도시에서 도시로 주문 받은 화물을 창고에서 창고로 배달을 하는 일로 그가 운전하는 트럭과 트레일러의 길이는 20미터(NZ 법적 최고 길이)에 전체 무게는 44톤(법적 최고허용 용량, 이 무게는 트럭 그리고 트레일러 무게 포함)라고 한다. OWENS 그룹은 세계적인 운송회사로 뉴질랜드를 포함한 미국, 호주, 홍콩, 타이완 등에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뉴질랜드에는 거의 각 도시 별로 배치되어 있다.

 OWENS 회사는 1953년 로버트 오웬(Sir Robert Owens) 회사 설립자가 작은 규모로 시작해 오늘날의 세계적인 OWENS Group으로 이어져 왔으며, 최고의 배달서비스를 제공하는 운송회사로 각광 받고 있다. 또한 상사와 직원들이 모두 한 사무실에서 오픈 데스크(open desk) 스타일로 함께 근무하며, 상사라고 해서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한 가족처럼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김씨는 말한다. 뉴질랜드에서 트럭운전기사는 법적으로 일주일에 70시간씩 근무하도록 허용되어 있고, 하루 13시간 이상씩 운전대를 잡는 것은 불법으로 간주한다. 또한 5시간30분 근무 후에는 반드시 30분씩 쉬고 다시 일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정해져 있어 트럭 운전사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합법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다.

김씨는 여가시간이 생기면 자녀들과 게임도하고 off road drive로 강가에서 현지인 친구들과 1박2일로 캠핑도하고 삼겹살도 구워 먹으면서 뉴질랜드의 자연환경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그는 더 열심히 일해서 기회가 된다면 트럭을 더 늘려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향후 목표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강진 기자 reporter@koreapost.co.nz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Hot
2009.03.25

Reading skill

코리아포스트 0    1,7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