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조나단과 김수환 추기경

갈매기 조나단과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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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은빛 조각들이 날아 오르고 있었다. 바다 저편 한 가운데에서 터져 오르는 은빛 향연은 낚시대를 바라보던 아내와 나의 시선을 동시에 잡아 당겨 고정시켜 버렸다. 멸치 떼들이었다. 멸치 떼들을 한동안 바라보며, 작은 것들도 저토록 찬란하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새삼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멸치 떼 한 가운데를 꿰뚫고 갈매기 한 마리가 시퍼런 바다를 향해 내리 꽂혔다. 아무런 망설임이나 두려움도 없이 거침없이 직선으로 급강하하며 넘실대는 파도 속으로 온몸을 내리 박았다가 다시 파도를 차고 올랐다. 갈매기의 부리에는 큼직한 물고기가 물려 있었다. 먹고 사는 것이 저리도 비장한 몸짓이어야만 할까?

갑자기 멸치 떼와 갈매기를 구경하고 있던 낚시대가 휘었다. 낚시대의 등이, 허리까지 굽으며 바다를 향해 확 휘었다. 숨차게 닐을 감아 잡은 고기는 50센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카와이(방어의 일종)였다. 잡은 고기의 멱을 따서 피를 내고는 낚시 가방에 집어 넣는데 꼬리 부분을 구부려 넣어야 했다. 좋은 횟감이다. 뉴질랜드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식탁의 사치이다.

낚시 바늘에 다시 낄 미끼 필차드(정어리)를 낚시 칼로 자르는데 갈매기들이 모여들었다. 정어리 부스러기라도 건질까 하여 곁눈질하며 턱 받치고 다가오는 갈매기들.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만리포에 가서 읽었던 소설 '갈 매기의 꿈'에서도 먹이를 얻어 먹기 위해 모여드는 갈매 기들이 묘사되어 있다. 해변에서 좀 떨어진 바다 위에서 고깃배 한 척이 물고기를 모으기 위해서 밑밥을 던지고 있었다. 그 작은 미끼들을 향해 날아다니며, 서로 다투며 먹이 부스러기라도 쪼아 먹으려고 갈매기들은 버둥대고 있었다.

리차드 바크(Richard Bach)의 소설 '갈매기의 꿈(Jonathan Livingston Seagull)'은 평범함 위로 비상하고자 했던 젊은 갈매기의 분투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Jonathan Livingston Seagull' written by Richard Bach is concerned with a young seagull's efforts to rise above the ordinary.)

평범한 갈매기들에게 있어서 나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은 갈매기가 나는 것은 먹고 사는 삶 이상을 위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나단은 고깃배와 해변가 갈매기들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혼자 외로이 비행 연습을 한다. 평범한 갈매기들로부터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는' 조나단은 따돌림 당하지만, 조나단은 더 높이, 더 멀리 날기 위해, 까마득한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평범함'과 타협하고 싶은 나약함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며 끝없이 진정한 자아 성취를 위한 비행 연습에 몰두한다.

어떤 이는 말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갈매기의 꿈'은 종국적으로는 사회에 기여하게 되는 반사회적인 개인주의를 묘사하고 있다." ("In one sense, Jonathan Livingston Seagull portrays an antisocial individualism that eventually contributes to society.") '갈매기의 꿈'이 캘리포니아 일대에 퍼져 있던 히피들의 배낭에 많이 들어있었다는 점과도 연관될 수 있는 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그 사회가 갖고 있는 가치관을 확대 재생산해 내며 젊은 세대들을 길들이고 끌어들인다. 그 일반적 가치관과 규범 이외의 생각이나 행동을 할 때 우리는 그들을 일탈했다고 생각하고 때로는 따돌리기까지 한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 이 시기에, 먹고 살기 위해 쉼 없이 일하고 날개짓 치기를 강요 받고 있는 2009년 2월에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는 것은 사치스럽고 반사회적인(antisocial) 생각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접하면서 조나단이 그토록 추구했던 더 높이 멀리 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곱씹어 본다. 내가 한국에서 젊은 날 갈매기 조나단을 떠올리며 그토록 오르기를 갈망했던 그 산은 무엇이었을까? 나만의 꿈의 산이라고 확신하며 끝없이 오르던 그 모습 또한 타인과는 약간은 다른 듯해 보이는 먹이를 얻기 위해 날개 짓 하던 평범한 갈매기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나는 카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김수환 추기경님은 결코 날개 짓 하는 고통스런 표정도 짓지 않고 저 멀리 높은 곳까지 날아가신 듯하다. 말없이 조용히 낮게 날며 한 없이 낮아지며 지극히 높은 곳까지 동시에 날 수 있는 비행술을 터득하신 것 같다. 작은 멸치 떼가 모여 찬란하고 장엄한 은빛 광경을 세상에 선사해 준 것처럼, 자신을 끊임없이 작게 작게 만들며, 자신을 '바보'라고 부르며, 이 시대의 마지막 큰 빛으로 날개를 접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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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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