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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2009. 16:37 코리아타임스 (124.♡.145.168)
일상 생활에서 용변(用便)을 본 경우는 특별히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러나 회사에서 일이 끝난 후 집에 돌아오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이웃집 담에 실례를 한 경우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평소 잊고 지내다가도 그 집을 지나칠 때마다 기억이 되살아날 것이다. 전자(前者)나 후자(後者)나 같은 용변인데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그것은 마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이다. 전자의 경우는 자연스런 생리작용으로 용변을 보았기 때문에 아무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여러 가지 마음이 일어났는데 그 마음들을 한번 살펴보자.
먼저 혹시 누가 보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이웃에 대한 미안한 마음, 스스로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 후회하고 반성하는 마음도 당연히 일어났을 것이다. 이렇게 두 경우를 비교해 보면 마음이 없으면 기억으로 남지 않고 마음이 있으면 기억으로 남게 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그 당시 의 기억과 함께 그 때 일어났던 마음도 되살아나게 된다.
세 살 때 집 앞길에서 개가 갑자기 달려들어 혼이 난 적이 있는 사람이 환갑이 지나도록 오랫동안 개를 만날 일이 없이 지냈다. 그 동안 세 살 적 일은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하러 대문을 열고 막 나서는데 동네 개가 달려들었다. 그 순간 60여 년 전 세 살 때 일어났던 개에 대한 무서운 마음이 되살아났다. 이것은 세 살 때 일어난 마음이 저장되어 있다가 그 마음이 되살아날 조건이 갖추어지니까 저장되었던 그 마음이 다시 나오는 것이다.
위의 예에서 본 것처럼 마음은 삶의 경험에서 생기는데 생긴 마음 일체는 저장 되고 저장된 마음은 조건이 갖추어지면 다시 나온다. 그리고 저장된 마음은 지금까지 없앨 수가 없었다. ‘마음을 비운다’, ‘마음을 닦는다’ 하지만 일어나는 마음을 갈아 앉히거나 눌러두는 (참는) 것에 불과하였고 마음을 없애지는 못하였다.
바르게 사는 법이나 지혜롭게 사는 법을 어릴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배우고 성현의 말씀을 들어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살아지지 않는다. 그것은 삶에서 일어나 저장된 이기적 인 마음, 욕심, 집착과 같은 마음들이 바르고 지혜롭게 사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이 있는 한 일시적으로 그 마음을 누를 수는 있겠지만(참을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그 마음이 다시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마음이 있는 한, 마음을 송두리째 없애지 않는 한 알고 있어도 알고 있는 만큼, 그리고 알고 있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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