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비극 - Ot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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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2008. 09:54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 (124.♡.145.221)
질투(jealousy)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감정 중 하나다. 인간의 질투라는 감정은 때로는 '모든 것을 다 태워 버릴 정도'로 파괴적이다. 구약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큰 아들 가인은 동생 아벨의 제사는 기쁘게 받으신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는 기쁘게 받지 않자 '타오르는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고 동생을 돌로 쳐 죽인다.
한 편 '질투심'은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질투심이 아 니면 시작도 안 했을 힘든 일을 실행에 옮기게 하는 추진력으로 작용해 개인이나 사회가 더 높은 것을 성취하게 자극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질투라는 감정은, 질투하는 자신이 추하게 느껴지게도 하고, 그 질투심을 남에게 들키면 인격적 성숙이 덜 된 사람으로 보이게도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질투라는 감정에 그럴듯한 명분의 옷을 입혀 자신과 타인을 속이려고 한다. 그래서 때로는 '뜨거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정의'라는 명분으로 위장을 한다.
Shakespeare의 4대 비극 중 Hamlet, Macbeth, King Lear등이 좀 더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면, Othello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감정인 '남녀간의 사랑'의 부산물인 '질투'에서 연유된 비극을 다루고 있다.
오델로(Othello)는 베니스의 무어인(흑인 회교도) 장군이다. 베니스 공화국의 원로인 부라반티오(Brabantio)는 용맹한 장군 오델로를 집에 초대해서 그의 무용담을 듣게 되는 데, 그 무용담을 듣게 된 그의 딸 데스데모나(Desdemona)는 오델로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데스데모나의 아버지 브라반티오는 장군으로서 오델로는 좋아했지만, 자신의 사위로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한 편 데스데모나를 짝사랑하는 베니스의 부유한 상인 로데리고(Roderigo)는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데스데모나의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 을 알려 달라고 오델로의 부하인 이아고(Iago)를 매수한다.
로데리고와 이아고는 브라벤티오의 집 앞에서 소동을 벌여 브라벤티오를 잠에서 깨워 데스데모나가 오델로와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이에 브라벤티오는 분노한다. 그는 공작에게 오델로가 자신의 딸을 유혹해 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데스데모나의 입을 통해 나오는 오델로와의 절절한 사랑의 이야기를 들은 공작은 브라 반티오에게 "강도를 당하고도 미소를 짓는 사람은, 그 도둑 에게서 무엇인가를 빼앗아 올 수 있게 되지만, 불필요하게 슬퍼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은 진짜로 강탈당한 사람이 되고 만다." – The robbed who smiles, steals something from the thief, while he who spends his time in unnecessary grief is the one who is truly robbed."- 라고 말하며 딸의 결혼을 인정할 것을 권유한다.
어쩔 수 없이 둘의 사랑을 인정하게 된 브라반티오는 오델로에게 "내 딸을 잘 지켜보게, 무어인, 만일 자네에게 보는 눈이 있다면 말일세./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속였으니 자네도 역시 속이고 말 것 일세."- "Look to her, Moor, if thou(you) has(have) eye to see:/ She has deceiv'd(tricked) her father and may thee(you as well)." – 라고 악담을 한다. 또한 공작은 오델로에게 사이프러스(Cyprus)로 가서 터키 함대와 싸워 줄 것을 명하고, 오델로는 데스데모나와 함께 사이프러스로 간다. 한 편 오델로가 자신을 배제하고 카시오를 부관으로 삼은 것에 앙심을 품은 이아고는 자신의 아내를 시켜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훔쳐 부관 카시오의 손에 들어가게하고, 카시오와 오델로의 아내 데스데모나가 불륜에 빠졌다고 오델로에게 거짓으로 고한다. 처음에는 믿지 않으려했던 오델로는 손수건을 들고 있는 카시오를 보고 타오르는 질투심을 억제하지 못하여 데스데모나를 목 졸라 죽인다. 솟구치는 '질투심'에 못 견뎌 아내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집행하는 것이라고 애써 자신을 정당화시키며 그는 살인을 저지른다. 나중에 이아고의 부인을 통해 데스데모나가 음모에 빠져 죽게 되었음을 알게 된 오델로는 결국 큰 절망과 고통 속에 자살하고 만다.
이 글을 읽으면서 그토록 신실한 아내를 죽인 오델로를 미워하게 되기 보다는 오히려 깊은 동정심을 느끼게 되는 것은, 비평가들이 말하는 충동적이고 경솔한 그의 성격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내 데스데모나를 신실하게 믿어 주었던 순수함과 배신 당했다고 믿게 되었을 때 보여 준 고뇌와 분노, 그리고 모든 진실을 알고 난 후 보여 주는, 그가 자신의 아내에게 행했던 잔인한 복수 만큼이나 통렬한 깊은 후회 등 그가 겪는 깊은 감정의 질곡이 너무도 생생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포용하기에는 너무 벅찬 운명의 파도 속에 파멸되어가는, 오델로는, 외부의 역경들은 강하게 극복해 나가지만 내면적 고난에는 약하게 무너지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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