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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0/2008. 14:16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 (123.♡.90.185)
뉴질랜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세계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탁월한 영어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경쟁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기에 영어권 국가에 와서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들어야하는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면, 가끔 마음 한편이 아릿하다. 더욱이, 비슷한 문화적 토대를 공유하고 있는 아시아권 국가들 사이에서도 문화차이에서 오는 충격(cultural shock)이 있기 마련인데, 기본적인 문화의 뿌리가 완전히 다르고 가치관도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 공부를 하다 보면 영어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문제뿐만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극복해 가야 한다는 것도 큰 과제이다.
한 미국인이 말해준 다음과 같은 일화는 서양사람들과 우리가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같은 문제에 접근하려고 하는 지를 보여 준다. 필자가 알고 있던 그 미국사람은 한국에서 한 편의점에 가서 사진기에 넣을 필름을 사려고 했다. 한국 말을 못하는 그는 자신의 사진기를 가르키면서 천천히 'Do you have film, film~?'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멀리 카운터 안쪽에 있던 상점 주인은 오른 손등을 위로 향하게 하고 들어서 그에게 손짓을 했다. 미국 사람은 그것이 필름이 없다고 가라고 하는 소리인줄 착각하고 그 편의점을 나오려고 했다. 그러자 카운터 뒤에 있던 주인이 얼른 뛰어나와서 그를 잡고 필름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미국 사람들에게 이리 오라는 손짓은 손 바닥을 위쪽으로 향하게 하고 다섯 손가락을 몸 쪽으로 당기며 손짓을 해야 했던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뉴질랜드 사람들이나 일본 사람들에 비해서는 표현을 좀 더 직설적으로 하고 자신의 감정을 몰래 숨기지 않는 것 같다. 어떤 키위가 일본 사람들은 상대방의 감정을 잘 배려하고 말을 항상 돌려서 하는데 한국사람들은 그렇지 않고 직접적으로 표현한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뒤에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 하는 대신, 아닌 것을 그런 척, 그런 것을 아닌 척해서 나중에 뒤통수 맞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일은 될 수 있으면 안 하려고 한다 라고 대답했다. 어떤 성격적 특성이든 장점과 단점 을 동시에 다 갖고 있다. 맛없는 커피를 마시고도 'beautiful' 이라고 표현하는 키위들의 습성 때문에 처음 카페를 운영하면서 진짜 자신이 최고의 커피를 만든 줄로 착각하고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럼 그렇게 생각이 다른 키위들과 대화를 할 때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말들 중 특히 유의해야 할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please'와 'thank you'라는 말이다. 'Would you like~?' 라는 질문에 'Yes'라고 할 때는 'Yes, please.', 'no'라고 하고 싶을 때는 'No, thank you.'라고 'please'나 'thank you'를 덧붙여 주어야 한다. 어떤 어린 한국 유학생이 캠프에 갔을 때 'Yes.'뒤에 'please'를 안 붙였다고 한 끼를 굶으라고 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그 소리를 듣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please' 없이 하는 'Yes.'는 상당히 귀에 거슬리는 소리인 모양이다.
한국의 TV 프로그램 중 하나인 '미녀들의 수다'에 나온 여러 명의 서양여성들은 자기들 나라에서는 식당에 가서 종업원을 부를 때 'Excuse me.'를 외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눈이 마주칠 때 눈짓을 하거나, 손을 살짝 든다든가 하는 신호를 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프로그램의 한 고정 출연자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식당에 들어가서 종업원이 와 주기만을 한참 동안 기다리다가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나서 식사를 포기하고 나온 적이 있었다는 경험담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오래 전 방영되었던 미국의 'Friends'라는 시트콤에서도 한 번 언급된 적이 있었다. 지금은 브래드 피트와 이혼한 전 부인 제니퍼 애니스톤은 이 시트콤의 한 장면에서 식당 종업원직을 그만 두게 되는 데 친구들이 왜 그만 두었냐고 묻자, 'Excuse me.'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만 두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질랜드에서는 큰 소리로 외치지 않고, 부드럽게 'Excuse me.'라고 하는 것은 예절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각 나라에 맞는 상황별 표현법이 무엇인지를 먼저 터득하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막아 준다. 키위들 중에도 상대방이 외국인이고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대화를 이끌어 가는 친절한 분들도 종종 만나기는 하지만 때로는 'Yes'뒤에 'Please' 한마디 빼먹었다고 이상한 표정을 지어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를 이해 못하는 그들을 탓하며 타향에서의 삶을 원망하기 보다는 먼저 한국과 뉴질랜드의 문화적 차이점을 이해하고, 모르는 것은 그 차이를 물어가면서 하나씩 배워 가는 자세가 도움이 될 것이다. 부모님들이 위축되지 않고 새로운 것들을 배워 가는 긍정적 자세는 그것을 보고 배우는 자녀들이 학교 생활에서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적응해 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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