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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2008. 16:18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 (123.♡.90.185)
어느날 젊은 부부가 나를 찾아왔습니다. "저희 부부를 예쁘게 그려 주세요." 참 잘 생기고 행복해 보이는 한 쌍의 부부였습니다.
나는 부부그림은 그리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돈을 더 줄테니 그려 달라고 말하더군요. 으익, 돈을 더 주겠다고...? 그러나 나는 결국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한사람의 초상화를 그리면 별탈이 없는데... 두사람 이상의 그림을 그리면 꼭 문제가 생기더군요.
이 그림은 1983년도에 우리 아내랑 아이들을 그린건데, 이 그림을 그린 후... 그 때부터 지금까지 25년 동안, 크흐흑~ 아내랑 아이들은 매일같이 싸우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어제는 아내가 아들이랑 한바탕 싸우더니 오늘 아침에는 딸애랑 또 한바탕 싸우더군요.
평생 그것을 지켜보고 살아가야 하는 내 가슴은 메어집니다. 그림을 치울까도 생각했는데... 그림이 너무 불쌍해서 그냥 걸어놓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결혼한 우리 딸의 집에는 싸구려 그림만 몇 점 있더군요. 내가 딸에게 말했지요.
"아빠가 좋은 그림 하나 그려 주마."
그런데 딸이 신랑이랑 같이 찍은 사진을 그려 달라 더군요. 그래서 그려 줬더니 얼마 후 이혼하더군요. 딸의 이혼은 우리가 더 권유를 했으니 잘한거지만, 어느날 그 그림을 창고 구석에서 발견하고는 찢어 버리지도 못하고 도로 쳐 박아 놨습니다. 아이고~ 불쌍한 내 그림, 하루 꼬박 그린 그림인데....
아내의 친구가 사위 될 사람을 인사 시키더군요. 다음달에 딸이 결혼한다고 말하면서 결혼선물로 딸부부 연필초상화를 그려 주시면 안되겠냐고 묻더군요. 그러마 하고 대답했는데 또 말씀하시더군요. "그리시는 김에 저도 하나 그려 주시면 안되나요?" 뉴질랜드를 샅샅히 뒤져 보아도 초상화 그리는 곳이 없고... 그래서 호주 시드니로 가서 화가한테 찾아갔는데 동양인은 그리기 어렵다고 안 그려 주더라는군요. "그래서 못 그리고 그냥 왔어요... 흐흐흑,"
나는 친구분이 너무 가여워 그림을 그려주기로 했습니다. 나는 친구의 딸부부 그림을 그리면서 아내에게 말했지요. "내가 이렇게 열나게 그림 그려 주면... 또 이혼하는거 아냐~? 괜히 그림만 불쌍해 지는건 아닌지.. 원..." 아내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더군요. 결혼식 때 나는 그림을 액자에 넣어서 선물했지요.
그런데... 1년도 못 가서 그 부부는 이혼을 했습니다. 아이고~ 불쌍한 내그림..... 지금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는지...
나는 노인 부부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했지요. (설마... 다 늙어 가지고 헤어지기야 하겠냐구...) 노인 부부는 나의 그림을 받고 너무 행복해 하며 거실에다 걸어 놓고 매일 쳐다 본다더군요.
그런데... 그 노부부도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흐흐흑, 할머니가 먼저 하늘나라로 간 것입니다. 정정하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할아버지는 내 그림속의 할머니를 어루만지며 매일 눈물을 흘리신다는군요. 아이고... 불쌍한 내그림....
불행을 가져다 주는 나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삽시간에 소문이 쫘 악 퍼졌습니다. 그래서 이런 걱정이 들더군요.
어느 부부는 나에게 찾아와서 말하기를 우리는 빨리 헤어져 각자 새로운 삶을 찾아야 하니 제발 부부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하질 않나... 어느 남자는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결혼사진을 들고 찾아와서 제발 하루라도 빨리 마누라를 죽게 그려 달라고... 제길~ 내가 무슨 킬러냐~~
어쩌면 나의 그림이 사람들의 새 삶을 찾게 하는 행복을 주는 그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의 딸은 이혼한 후 바쁜 생활을 하며 잘 나가질 않나, 친구의 딸도 이혼한 후 평화롭게 새 일을 시작하고 가정이 화목한 생활을 하고 있고, 앞으로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돈 때문에 결혼한 억만장자가 거액의 수표 한 장을 내밀며 "초상화 한 장 그려주쇼~"
요 말만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아직은 연락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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