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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8/2008. 15:08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 (218.♡.85.150)
삼십년만의 큰 태풍이란다. 홍수에 집이 잠기고 고목이 뿌리째 뽑혀 벌렁 누운 모습도 보게 되는 그런 특별한 겨울이다. 이 나라가 태풍의 소용돌이에 깊숙이 갇혀 버렸는지 거센 비 바람이 끊일 줄 모르고 계속된다. 그만저만 끝날 때가 되었다 싶은데도 물주머니가 터진 듯 뭉턱 뭉턱 쏟아 내곤 해서 지루하고 짜증스럽다. 춥고 음침한 집 속이 마냥 답답해도 쭉지 잃은 새가 되어 웅크려 앉았을 수 밖에...
이렇게 우중충한 날에는 철저히 속물이 되는 수 밖에 없다. 활기차고 산뜻한 TV 프로라도 뒤져서 기분 전환을 해야 한다.
주변 섬나라들의 춤 축제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마치 물오른 대나무처럼 싱싱하게 뿜어내는 젊음의 활기가 전율처럼 짜릿하게 전해져 온다. 번들번들한 피부, 부릅뜬 눈동자 불거진 근육, 격렬하고 위협적이고 정열적인 춤사위. 그 힘이 그 열정이 과연 섬나라 사람들답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렇게 모두가 드러내 놓고 흔들고 뛰는 게 전부여서 정서라던가 예술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 게 아쉬웠다. 물론 문화의 이질감에서 오는 내 무지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럴 때 내 머리 속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던 한국 춤 하나가 떠오른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뒤늦게 고전 무용을 배우는 친구를 따라 "인천의 춤"을 본적이 있었다. "인천 종합 문화 예술 회관"의 위용에 우선 놀라웠고 시립 무용단의 정기 공연이라는데 그 규모의 어마어마함에 가위 눌렸었다. 지방 문화의 활성화가 이렇듯 대단하다니...
하늘 하늘한 의상 속에 유연한 몸짓, 휘황한 조명아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 같다는 첫 느낌이었다. 불교의식 무용으로 특별한 동작이 많은 "명발 바라춤"은 배우기가 어려운 매우 힘든 춤이라고 하며, 나비가 애벌레로 기어 다니다가 마침내 날개를 얻어 날았을 때의 환희를 조용한 동작으로 표현한다는 일명 해탈부라는 춤은 "운심게 나비춤"이라는 제목으로 여덟명으로 구성한 춤이었고 법고 춤이나 타주무는 스님춤으로 남자들의 것이었다.
승무, 소고춤, 흥춤, 입춤, 두드리라의 북치기는 한국춤의 대표적인 것이지만 무속 무용의 성주풀이 춤과 인천의 향토 무용인 "나나니 춤"이 그 중 이색적이고 재미있었다. 인천지방 무형문화제 3호로 지정된 "나나니 춤"은 그 이름부터가 흥을 돋우어 주는 것 같은 느낌으로 그 지방 특유의 것이어서 더욱 관심이 두드러졌는지도 모른다. 인천의 갯가(섬) 여인네들 사이에서 놀이 노래로 전승된 나나니 타령의 춤으로 일인 춤, 이인 대칭춤, 삼-오인의 장난끼 섞인 해학의 춤, 일체감을 풍기는 단체춤이 타 지역의 향토춤인(강강술래)와 다르게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한 마당에서 흥과 멋을 살려 내는 특징이 있어 친근감을 더해 주었다. 섬 여인들의 허름한 옷차림으로 몽탁하게 추켜 올린 치마며 의상부터가 특이하고 재미 있었다. 여인들이 모여 노는 수다스러움이며 물 속으로 첨벙 뛰어들 것 같은 갯네 물씬 풍기는 향토 무용다워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정통 무용에서 창작품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한국춤의 참 멋과 신명을 일깨워 주는 교육프로그램으로, 문화예술 감상의 기회로 내 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준다는 취지가 부럽다. 낯선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서가 메말라 가는 내 가슴속에 오랜만에 단비로 촉촉해 지는 순간이었다.
당 지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 주며 지역 문화 예술의 활성화와 시민들에게 건전한 주말 문화 공간을 마련해 풍요로운 문화 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토요상설 공연을 펼친다니 더더욱 부러울 뿐이다.
공연장을 빠져 나와 들뜬 기분으로 늦은 저녁을 먹으러 휘황한 밤거리를 취한 것처럼 배회하던 우리들 모습이 그리움으로 다가든다. 그 찬란한 춤의 도시, 거대한 빌딩숲에 묻힌 인천의 밤거리, 나나니 춤을 추던 갯가의 여인들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향토 무용으로서의 가치가 그래서 더한 게 아닌지? 오래오래 전승보전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친구여 당신은 오늘도 어김없이 그 춤판에서 굳어가는 근육을 풀면서 춤사위를 익히겠지, 언제인가 멋진 학 춤이라도 한판 선사하시게.-----
나나니 춤과 한판 잘 놀고 나니 문을 흔드는 거센 비바람소리가 춤판에서 두드리는 북소리 같아 정겨워서 맑은 정신이 되살아 났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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