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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2008. 15:14 KoreaTimes (125.♡.179.126)
꿈을 이룬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두근거리고 벌써부터 행복감이 밀려온다. 지금 보이는 앞은 비록 희미하지만 이미 보이는 것을 잡으러 가는 것은 젊음이라는 단어를 퇴색시키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바쁘게 가야할 미래를 생각하며 지금의 부족한 모습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은 흥미 진진한 나와의 게임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Denco Air NZ Ltd.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이창준 씨를 만나니 세계 각 곳에서 이 씨처럼 꿈을 향해 열심히 전진하고 있을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생각나 마음이 뿌듯하고 든든해 졌다.
이 씨는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으셨던 부모님의 결정으로 10살 때인 1991년 한국을 떠나왔다. 그는 뉴질랜드에 와서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것이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다. 한국에서 공부했다면 공룡이 추워진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졌듯이 자신도 그 곳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이 씨는 자신이 처음 뉴질랜드의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그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언어 때문에 느꼈던 어려움과 낯선 곳에서 어색한 하루를 마친 후 약간의 설움(?)이 섞여 집에 와서 내내 울었다고.
자녀들 영어공부를 위해서 한국 학생이 없는 학교를 보내고 또 일부러 한국 프로그램이 녹화된 비디오도 일체 빌려 보지 않았던 부모님 덕택에 영어도 비교적 빨리 늘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삶을 희생해 오시며 자녀들을 돌보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늘 감사하다. 키위 친구들은 알게 모르게 동양에서 온 아이들은 공부를 잘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하는데 동양인이 라는 이유로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냐고 물어 봐 당황한 적도 있었단다.
어렸을 때부터 로봇을 그리는 것이 취미였다는 이 씨는 디자인에 대한 공부를 하기로 결정하고 오클랜드 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내내 지극히 뛰어난 수재의 성적은 아니었지만 부끄럽지 않을 성적을 유지했기 때문에 졸업 후 취업에도 자신만만했었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대기업들에 넣은 이력서도 곧잘 합격되고 면접까지 잘 치르고도 최종 결과에서는 번번이 고배를 마시면서 1년이라는 시간을 취업으로 보내게 되었다.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스스로에게도 좌절감을 주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얘기겠지만 그 시간 동안 늘어 가는 것은 더욱 화려해지는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의 작성 스킬이었고 면접은 면접관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볼 정도로 노하우가 쌓여졌었다고 한다. 계속되는 낙방에 아시안이라서 차별을 받는 것 아니냐는 주위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려왔지만 이 씨는 자신 개인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절대로 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 혹시 정말 그렇다 하더라도, 만약 그런 생각을 인정하는 것은, 절망과 포기를 스스로 강요받는 것이나 다름 없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그가 다니는 회사는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그에게는 경험을 쌓고 경력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조건의 회사라는 것이 뜻깊다. 대기 업을 제외하면 회사들은 직원 트레이닝 비용을 생각해 어떻게든 경력자를 뽑으려고 하는 게 보통인데 이 씨가 갈 자리는 아무래도 따로 있었는지 그는 원래 30분 정도 하는 면접을 10분 만에 마친 후 회사로부터 취업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냉난방 시설과 환기 시스템 서비스(HVAC system)를 제공하는 이 회사에서 그가 맡은 일은 시설 설치에 대한 디자인이다. 대학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던 내용을 직접 실무에 접목시키면서 처음에는 일을 배우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꽤 능숙한 일군이 되었다. 요즘에는 연말이 다가 올수록 작업 량이 많아져 하루 종일 컴퓨터와 싸우고 있단다.
이창준 씨는 내년쯤 비행기 설계를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호주로 떠날 계획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의 꿈을 갖고 있다. 미래를 생각하면 두려움보다 설레임이 많은, 갈 길이 멀어 행복한 청년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