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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2008. 15:17 KoreaTimes (125.♡.179.126)
본지 웹사이트에 얼마 전 새로 문을 연 '7080 카페'에 음악과 함께 심상치 않는 글솜씨를 자랑 하며 멋진 시를 올리는 인기작가가 탄생했다.
거꾸로 서서 본 江 - 사과꽃이 핀 뜰
사람마다 강의 폭이 다름을 어쩌겠습니까
큰 물에 휘둘리고 센 물에 화두(話頭)가 깎여 곧던 몸에 구비(曲)가 생기고 투명한 혼에 골이 생기는 걸
넉넉했던 바위가 쓸려 요령 반질거리는 자갈도 되고 아량을 담던 모래가 아집의 진흙이 되기도 하는 걸
사람마다 강의 폭이 다름을 어쩌겠습니까
외롬을 덜어보려 네 빗물도 담았다가 내 몫이 아님을 깨닫는 나의 눈물도 담고
꺾이지 않던 갈대가 누워 골절(骨折)된 뜻 아파도 하고 반 쪽이 잘린 사랑이 빠져 눈 부릅뜨기도 하는 걸
내 강의 폭이 그대와 다름을 난들 어쩌겠습니까,,
해를 더할 수록 세속의 강심(江心)만 깊어져서 그대의 가랑비 느낄 수 없게 되었음을 너 없이도 살 수 있단 말 강둑에 넘치는 것을
풍부한 감성으로 써내려 간 이 멋진 시의 작가가 너무나 궁금하다. 주인공은 바로 현재 노스쇼어병원 내과 간 호사로 일하고 있는 김지영 씨. 그저 흉내만 내어 쓴 것 이라며 겸손하게 웃는 그녀의 말과는 달리 평소 책 읽는 것을 즐겨서 그런지 카페에 올리는 시마다 수준급에 특별히 공감 속에 생기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어 한 단어 한 단어를 곱씹어 의미를 되새기며 읽게 한다.
"시는 인생을 담고 있잖아요. 많은 어려움을 겪을수록 깊이 있는 글이 나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여린 그녀의 감성은 시련의 세월이 만들어 낸 궁극의 산물이었던 것인지 그녀의 삶의 굴곡이 만들어 낸 감추인 이야기들이 하나씩 하나씩, 그녀를 강하게 다져 놓은 그 시간들 속에서 진실함으로 걸러져 나왔다.
95년 봄 뉴질랜드에 처음 발을 디딜 때만해도 특별히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본 적 없었다. 이민 온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한동안 향수병으로 병치레도 했다. 하지만 가정적인, 물질적인 어려움이 현실적으로 뒤따르며 '온실 화초가 뿌리째 뽑혀 사막 가운데로 내팽개쳐진 것' 같은 시간에 부닥치기도 했다.
김 씨는 일찍 결혼을 했기 때문에 벌써 두 아이는 성 년이 되어 각각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데 큰 딸은 두바이에서 항공기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엄마의 마음을 읽어 주는 든든한 친구가 되어 주고 있다. 지금은 노스쇼어 지역에서 Form 5, 3인 두 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김 씨는 자신이 간호사가 될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단순 파트타임 업무만 계속할 수 없다는 생각에 오클랜드 대학교에서 Biomedical Science 공부를 시작했는데 2학 년을 마치고 간호사가 앞으로 유망한 직업에 취직도 쉽다는 말을 듣고 마누카우의 MIT에 서 간호학 공부를 시작했다.
듣고 쓰는 것 위주였던 오클랜드 대학교에서의 학업과 달리 토론이나 발표가 끊임없는 간호학과 공부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극도로 힘들어했던 그녀의 내성적인 성격에 너무나 큰 도전이었다. "발표가 있는 날이면 교실에 들어가는 것이 꼭 수용소 같은 곳에 붙잡혀 들어가는 기분이었어요."
그랬던 김 씨가 용기를 얻게 된 계기는 바로 같이 공부하던 의사출신 중국인들이었다. 솔직히 잘 이해하기 힘든 발음이었지만 그들은 남들의 눈치보지 않고 자신있게 발표를 해냈다. 김 씨는 나도 그들보다 부족할 것 없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이어지는 발표들을 침착하게 해냈고 이를 통해 영어실력도 늘었을 뿐 아니라 내성적인 성격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등록금은 모두 대출 받고 정부에서 주는 학생 수당으로 생활하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어려운 공부를 마쳤기에 스스로도 자녀들에게도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을 해낸 것임에 틀림없겠다.
간호사로 일하면서부터는 또 다른 어려움이 밀려 왔다. 미들모어에서 1년 반 동안 처음 경험을 쌓았는데 근무 시간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저녁에는 밥 먹는 시간도 반납하고 희생하고 배우는 자세로 노력했다.
하지만 쌀 쌀맞은 키위 수간호사에게 별 것 아닌 것으로 호되게 혼나고 일부러 자신을 시험하려 드는 동료들의 태도를 보며 김 씨는 자신의 방법이 그네들에게 오히려 자신을 무시하도록 만든 잘못된 것임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그 후로 김 씨의 태도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개개인의 의사와 경험을 존중해주는 이들의 문화에 적응하며 선배의 말에도 틀린 것이 있으면 지적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조금씩 내기 시작했다. 동양인,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편견을 실력으로 극복하겠다는 다부진 각오로 업무에 임하니 조금씩 인정받게 되었고 일도 자연스럽게 더 즐거워졌다고 한다.
***** 못된 선배간호사에게 통쾌한 1승 ******
노스쇼어 병원으로 약 3년 전 옮겨 왔을 때에는 유난히 거칠고 다른 간호사들에게 상처를 주던 한 선배 간호사가 있었다. 김 씨는 자신을 무시하며 인사조차도 받지 않던 그녀에게 실력으로 인정받겠다는 생각으로 기회만 노렸는데 몇 주 후 마침 의사가 처방한 약물 투여 방법 을 놓고 그 선배 간호사와 다른 간호사가 당황해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계산방법이 틀렸더라고요.이게 바로 신이 주신 기회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죠." 김 씨가 가볍게 다가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자 처음에는 면박을 주며 무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설명하자 선배 간호사는 사뭇 놀라며 주춤해 했고 동료 간호사는 김 씨의 방법대로 하니 계산이 맞아 떨어진다면서 그녀를 옹호했다.
다음 날 그녀의 방법대로 투약한 것에 대해 담당의사가 칭찬한 것이 병동에 소문나면서 그녀를 대하는 동료들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때만 생각하면 그렇게 통쾌할 수 없다고.
김지영 씨가 일하는 내과는 노인 환자들이 많고 특히 치매에 걸린 사람이 많아 그녀는 매일 그 속에서 많은 것을 깨닫는다. 김 씨가 본지 웹사이트 7080카페에 올린 '너는 안 늙니' 라는 글 속에 그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엄마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작은 아기들 같다 는 느낌... 결국엔 처음 찍었던 점으로 돌아오는 동그라 미같이, 태어났을 때의 그 무력하고 힘없는 모습으로 돌 아가는 인간. 그것이 바로 내 부모의 모습이고 또 앞으 로의 내 모습이 될 것이다. 그래서 마음 한 구석이 짠하 게 애잔해져 옴을 어쩌지 못하겠다...
사회경험을 해 본 적도 없고, 내성적인 성격에, 영어도 왕초급 실력이었던 이민초기의 모습에서 이제는 5년차 간호사로 키위 사회 속에 당당히 실력을 인정받는 지금의 모습으로 서기까지 그녀가 부딪쳤을 어려움들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어려운 현실 속에서 생각을 바꾸고 공부를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와서 깨닫는 것은 이민은 돈이, 경험이, 운이 성공을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요,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본인의 의지와 태도가 성공한, 아니 '행복한' 이민을 만드는 열쇠였다는 것이다. 참 당연한 말 같고, 어찌 보면 식상하기까 지 한 말인데 체험으로 절실히 깨달은 사람의 입에서는 힘있는 고백이 되어 나왔다.
김지영 씨는 5년간 학교를 다녔던 것에 대해 늦게 시작한 공부라고 또는 그 시간이 너무 길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7, 80년 인생에 몇 년의 투자는 결코 아까운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도 주위 사람들이 1년 공부할까 3년 공부할까 고민하면 그녀는 3년 짜리를 택하라고 권한다고 했다.
앞으로 김 씨는 뉴질랜드에 부족한 직업 중 하나인Midwifery(산파) 공부를 고려하고 있다. 이 또한 그녀의 삶에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그에 따르는 삶의 보상을 누리는 맛은 그런 용감한 사람 들에게만 오는 선물이다. 앞으로도 도전은 '김지영'이란 이름의 동의어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