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 "우리는 코리안 키위입니다."-이홍규 보좌관

[355] "우리는 코리안 키위입니다."-이홍규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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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최초의 아시아인 국회의원으로 이미 언론과 여성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던 Pansy Wong 의원. 그녀는 96년에 당선되어 아직까지 국회의원 직을 유지하고 있는 국민당의 몇 안 되는 4선 의원 중 하나다. 현재 소수민족과 이민문제 등을 담당하는 당내 대변인 역을 수행하고 있는 그녀는 한국인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다. 중요한 정치적 이슈나 쟁점 현안에 대해 한국말로 번역한 보도자료를 돌리는 유일한 국회의원.... 그녀 곁에는, 항상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 주는 한국인 보좌관 이홍규(49세)씨가 있다.


지상낙원, 뉴질랜드

소년 시절, 이홍규씨에게 뉴질랜드는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중학교 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김찬삼 교수의 세계 여행기는 그가 뉴질랜드라는 나라를 알게 된 첫 인연.

"웬만한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죠. 그 때 여행전문가가 쓴 컬러로 된 책은 어린 저에게 정말 강한 인상을 줬어요."

책에 묘사된 뉴질랜드는 그야말로 풍요로운 지상낙원이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해외 펜팔을 이용해 뉴질랜드 여학생과 편지를 교환하며, 동경이 현실로 바뀌어질 날을 꿈꿨다.

늘 꾸는 꿈은 언젠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95년, 그가 이민을 결정했을 당시 모든 일은 뜻밖에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장남이라는 책임감과 아내와 두 딸을 거느린 가장이라는 부담감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는 1년도 채 안 걸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 곳으로 왔다.

한국에서 평범한 영어 선생님이었던 그가 뉴질랜드에서 처음 뛰어든 일은, 바로 새 농장 사업! 무임금으로 농장에서 일하며 '새 농사' 일을 배운 그는, 직접 '에뮤'를 사서 키우기 시작한 지 2년만에 사업 실패의 쓰디쓴 경험을 하게 된다. "실패한 만큼 제 안으로 경험이라는 자산이 쌓이는 법이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뉴질랜드라는 나라를 좀 더 많이 알게 됐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됐죠."

낙천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의 그는, 그 후 10여 년간 가정용품 매장 등을 운영하며 안정적으로 뉴질랜드에 정착해 나갔다.


10년 만의 터닝포인트

그가 Pansy Wong 의원과 인연을 맺은 건, 이민 온 지 10년이 넘어가던 시점이었다.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며, 인생 전반에 대해 고민하던 중 우연히 국회의원 보좌관 모집 공고를 발견한 것. 2006년 2월, Pansy Wong의원과의 최종인터뷰를 마친 그는 국회 사무처 소속 공무원이자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는 타이틀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찾게 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 처음 맞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많은 일을 겪었다. "여러 가지 문제로 도움을 요청하는 교민들의 전화가 꽤 걸려 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돕지만, 간혹 어쩔 수 없는 경우들이 있어 안타깝죠."

그는 이 사회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정에 의존하거나 섣부른 기대를 하기 보다는 항상 냉철한 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특히 서류 문제에 대해서는 항상 충분히 검토하고 확실히 이해한 후 사인할 것을 당부했다. "관례적으로 그냥 사인을 했다가 불이익을 당해 억울해 하시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돌아온 다는 사실을 항상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은 한국 교민으로부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한국말로 하소연 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정말 좋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뉴질랜드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교민들을 접하면서 그가 자주하는 생각은 '우리 스스로가 이 사회의 주역'이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드는 단어 사용에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 보통 유럽계 백인들을 키위라고 부르는데 사실 뉴질랜드에 사는 우리 모두 키위입니다. 우리는 코리안 키위인거죠." 그는 또한 "선거에 좀 더 참여하고, 공청회 등을 통해 후보자의 공약을 직접 듣고, 우리의 바램을 요구하는 등 한국인들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현재의 일에 충실하며 뉴질랜드 사회를 좀 더 폭 넓게 배울 예정이라는 이홍규 씨. 그의 노력이 뉴질랜드 내 한인들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발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연희 기자 (reporter@koreatimes.co.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