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카파파 비지터센터에서 100여m 아래의 나우루호에 플레이스라고 부르는 길을 따라 트랙의 시작점으로 갔다. 걷는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손톱 만한 화산암이 깔려 있는 길을 걸어가니, 발바닥으로 경쾌하게 바삭거리는 소리가 들려 온다. 우비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꽤나 시끄럽지만 체력이 좋을 때 이런 소음은 오히려 행진곡을 듣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빗물에 의한 탈모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뉴질랜드의 빗물은 맑고 깨끗해서 거르지 않고도 식수로 사용하기에 충분하다.
좌우로 검게 탄화된 관목들이 잎 하나 없이 서 있다. 루아페후 산기슭이지만 화학 성분이 많이 녹아 있고 고도가 높아, 키가 큰 나무가 거의 없이 작은 관목들만이 허리 높이로 나즈막하게 서 있다. 구름이 많이 끼지 않았으면 정면으로는 나우루호에, 오른쪽으로 루아페후가 서 있겠지만, 불행히도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맑으면 저 멀리 나우루호에를 넘어 통가리로와 푸케카이키오레(Pukekaikiore)까지 보인다.
내리막길로 접어드니 너도밤나무 숲과 와이레레 시내가 나온다. 몇 무리의 숲과 관목을 지나면 작은 다리가 나오는데 이 곳에서 하부의 타라나키 폭포가 보인다. 오랜 세월동안 흐른 강물이 화강암을 자연스레 갈아 내어 부드럽고 아름다운 곡선의 바위와 함께 독특한 모습의 폭포를 만들었다. 아래의 물웅덩이에서 텀벙거리는 소리로 봐서 폭포 아래의 연못이 꽤나 깊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곳에서 약 2분 가량 산을 오르니 멀리 커다란 폭포가 눈에 띈다. 상부에 있는 또 하나의 타라나키 폭포다. 약 15,000년 전 루아페후가 폭발하며 용암이 흘러내리다가 응고된 곳에 생긴 폭포다. 이 폭포는 산 정상에서 직선 거리로 약 9km 떨어져 있으니, 그 화산 폭발이 얼마나 장엄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폭포 옆의 젖은 의자 옆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이 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기후의 매서움을 맛본다. 산자락의 골에서는 바람이 잠잠한 듯하다가 등성이로 올라가면 세차게 바람이 불어 왼쪽 볼을 때린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이 곳을 바로 타마 새들(Tama Saddle)이라고 부른다.
계속된 초겨울 비에 나무계단은 물이 가득 차 있고, 물살에 떠 내려온 부석(pumice·부력이 높아 물에 뜨는 돌)이 둥둥 떠 있다. 20분 남짓 걸어 올라온 새들의 정상에는 생각보다 바람이 적게 불었다. 풀 몇 포기 눈에 띄긴 했지만, 얼마 전에 본 화성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답답한 털모자를 벗고 가져온 초콜릿 봉지를 열었다. 의외로 이 곳에는 수분이 많아 작은 연못(tarn)이 있고, 그 주변으로 풀들이 잔뜩 자라고 있다. 이 곳부터는 트랙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오렌지색의 화살표를 따라 길을 찾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