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같이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에 한줄기 밝은 빛으로 모든 사람들 가슴속에 훈훈한 감동을 심어준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
지난 4월 어느날, 아침 방송 뉴스시간에 고국소식을 알려오는데 뉴질랜드 교민 어느분이 온 재산을 몽땅 카톨릭재단에 헌납하셨다는데 맨 나중 그 주인공의 이름을 들으며 그분이 바로 내 측근의 형님이어서 흥분과 동시에 몸에 전률이 왔다. 세상에 이런일이!....
불황에 물가오름세에 삶이 힘들다고 야단들이고 새 정부가 들어선 고국 소식도 밝고 산뜻하기 보다는 시끌벅적 요란한 소리만 들려오니 점점 마음이 무거워지는 현실이 아닌가. 이 어둡고 답답한 시대에 작은 등불 하나로 빛을 내어 희망을 주고 바위틈에서 솟아나온 석간수 한복음으로 목을 축인듯 시원하게 가슴을 적셔준 그 분으로 하여금 주위가 따뜻해졌다.
이민 사회에선 별 사람들이 다 있다. 고국에서 살 때는 집에 황금송아지 매고 살았다는 사람도 많고 명품백화점만 드나들었다고 자랑하는 부류들은 왜 또 그리도 많은지? 그 형님은 큰 목소리 한번도 안 내고 조용하게 조촐하게만 사셨기에 그렇게 큰 재산을 보유하신 사실조차 알수가 없었다. 영감님 돌아가시고 나자 깔끔하게 주변 정리 하는것도 보통분들과 달라 부러움으로 존경을 했는데 어느날 훌쩍 한국으로 날아가시더니 드디어 큰일을 해낸 것이다. 어쩔수 없는 순리로 젊은이들 속에 기대어 공연스레 미안해서 숨죽이고 살게되는게 노후의 인생이거늘, 갑자기 우리 노인들 위상이 돋보여지는것 같아 더부러 힘이 생기고 어깨가 으쓱해진다.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세대였다. 6.25 동난에 모든걸 잃기도 했고 전후의 어지러운 혼돈속에서 살아내기가 바빠 지금 젊은이들처럼 사치라던가 호사같은것은 생각도 못하고 오직 알뜰하나로 버티어냈다. 그분인들 무엇이 다를까. 조상의 재산을 물려 받은것도 그렇다고 남편이 남긴것도 아닌 오직 혼자의 힘으로, 거기다가 어려운 조카들 뒷바라지까지 하며 헤프게 안쓰고 차곡차곡 모았던 큰 덩치의 재산을 사회에 몽땅 헌납하고 빈 손 털고 홀연히 돌아 오셨다. 노후에 과수원 일구며 살련다고 마련했던 싯가 십억에 가까운 네 필지의 산을 가볍게 희사하고 오신것이다. “세상에 나왔다가 사람의 이름값은 하고 가야지” 멋지다 너무도 훌륭하고 멋지다. 그 어느때보다 화사하고 행복해 보이는 그 분의 얼굴 표정은 그 아무도 흉내 낼수도 따라 할 수도 없는 특별한 것이었다. 그런 큰 일을 해 낸 분만의 독특한 것이었기에 그 잔잔한 미소까지 남달라 보였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그 형님이 그렇게 멋있는 생각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오신 분이었음을 몰라 뵌게 너무 송구스럽다. “이제 내 맘이 얼마나 편한지 몰라” 누군가 나 하는일에 방해를 놓을 것 같아 노심초사했는데 잘 끝나서 다행이라며 마치 큰 짐을 벗어 놓은 듯 홀가분해 하신다. 긴 세월 스스로 다짐하고 준비했다가 마침내 이룩해 내고야 만 너무나 큰 기쁨때문이리라.
내것 많이 만들려고 사기다. 부정이다 사회를 어지럽히고 더럽히는 금전 만능의 시대에 역행을 자행함으로 귀감을 보여준 분은 보람으로 꽉 찬 여생이 아마 두고 온 산보다 더 큰 몫으로 마움속을 채워드릴 것이라 믿는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도 있지만 어떻게 벌었는지 돈을 뭐 같이 쓰는 사람들도 많다. 하룻밤 술값으로 몇천만원을 쓴다는 별천지의 사람들도 있는가하면 카지노의 노예가 되어 돈다발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는 세상이다. 부익부 빈익빈 그렇듯 허영과 헐벗음이 한 시대에 섞여 살고 있기에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자랑이 되고 불공평의 조화를 이루는게 자본주의일까? 돈이 아무리 많아도 제법한 구실로 쓰이지 못할 때는 아무 가치도 없는 쓰레기일 따름이라고 생각된다. 정당하고 떳떳지 못하게 번 돈이 쓰레기가 되기 십상인걸 자주 본다. 시장에서 콩나물 값 깎는 알뜰 주부들이 집안에 들어오는 도네이션 봉투를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게 보통이다. 돈을 쉽게 물쓰듯 막쓰는 사람들은 그런 일에 오히려 관심조차 안 갖는것 같아 안타깝다. 그것은 무슨 이치일까? 이심 전심으로 어려운 사람들만이 그 아픔을 알 수 있다는 철학때문인가? 돈을 제대로 쓸줄아는 사람은 진짜 멋쟁이다.
“이제 내가 쓸것이 부족할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돼” 빈 손이 되었다는 약간의 헛증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순수한 그 형님의 마음이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와 정이 더해진다. 요란스럽게 소리내지 않고 조용히 미소지으며 진심을 털어놓는 어린애같은 노인. 그 분은 진정 이 시대의 등불이고 우리들 모두의 힘이며 아름다운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