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 행복한 밥상을 위한 투쟁 (Ⅰ)
내 아들의 유아 시절, 입이 짧아 2Kg 정도 체중 미달이었다. 나는 아들과 무던히도 머리싸움을 했다. 사과, 귤 주스를 만들어 우유병에 넣고 빨게 하다가 슬쩍 빼 버리고, 계란 야채 으깬 것을 한숟갈 먹이고 또 얼른 주스병을 물렸다. 아이는 좋다 싫다 말도 못하고 얼떨결에 삼켰다. 각종 곡식을 쪄서 몇날 며칠 말려서 미숫가루를 만들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 정성 들여 마련한 것을 안 먹는다고 도리질을 치면 눈을 부라리며 겁을 주고, 우유병에 넣어 잠결에 몰래 물리기도 했다. 덕분인지 살도 단단해지고 무엇보다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랐다.
미친 정성이었다. 윽박지르고, 회유하고(장난감 사 줄게),강제로 먹이고, 속여서 먹이고(속이는 방법도 다양했다)---.목적을 위해서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나쁜 엄마였다. 아이는 먹지 않을 권리가 있었다. 나는 진정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고, 아이 스스로 행복해 하며 먹도록 했어야 했다.
유기농에 신선한 재료만 사다가 아이에게 먹이고, 결과도 좋았는데 나는 지금 가슴을 치고 있다. 아들의 인권이 존중되지 못했고 나에 의해 사육되었다는 깊은 회한 때문이다.
요즘, 끼니 때만 되면 '뭐해 먹나' 걱정이 태산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조국의 쇠고기 파동 때문에 뉴질랜드 소도 입맛을 뚝 떨어뜨린다. '싸고 맛있는 쇠고기(?)'를 '선진적으로 개방한' 이명박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물론 딱히 쇠고기 문제만은 아니겠지만) 서명이 120만을 넘어서고 있다(5월 6일 현재). 국부(國父)인 대통령과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온 국민을 마루타로 내몰고 있다는 원성이 드높다. 나는 고국이 번영하고 세계의 귀감이 되는 나라로 우뚝 서길 바란다. 하여 이명박대통령과 정부 관계자에게 묻는다.
왜 미국측과 국제 수역 사무국(OIE)의 말은 100% 신뢰하면서, 자국민의 우려와 절박한 심정은 모두 정치적 공세로 몰아가는가? 국민들이 스스로 자료를 찾고 판단할 정도의 지적 수준도 없는 무지랭이들인가? 일본 유럽 협상팀은 이유없이 깐깐하고 까다롭게 구는 것인가?그들도 과장인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효선 미선양을 애도하는 촛불 시위도 반미로 몰더니, 공포의 쇠고기를 덥석 다 받아 드리겠다는 협상에 반대하는 국민도 반미 좌파로 몰고 있다. 좌파가 뭔가? 설사 반미라 해도 왜 반미하면 안되나? 내 아이를 죽이고, 위험한 음식을 먹이려 하는데 '좋아, 좋아' 그러고 있으란 말인가?
한국 TV에서 급식 시간에 불고기를 상추에 싸서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비쳤다. 해맑은 눈동자, 반질반질한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긴 뽀얀 피부의 천진하고 예쁜 아이들, 며칠째 눈 앞에 아른거리고 나는 눈물이 난다. 우리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살려주세요. 죽고싶지 않아요. 대학가고 결혼하고 애 낳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말똥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어야 할 10대 여학생들이 왜 죽음의 불안 속에서 영혼을 갉아 먹혀야 하는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도, 6.25 동란 중에도, 광주 민주화 항쟁 등을 겪고 대학 캠퍼스에 군인들이 막사를 치고 주둔할 때도, 최루탄의 포화가 전쟁터를 방불케 할 때도 이렇게 100% 불안하진 않았고, '희망'도 있었다. 30개월 이상, 변형 프리온 농도가 높은 부위(SRM)까지 모두 수입하기로 한 지금 '불안, 절망'이다. 이명박대통령과 정부가 미국에 가서 하고 온 일은 협상이 아니다. 무릎 꿇고 그저 '분부만 내리십시오', 그런 모양새다. 한일합방 때만 주권을 뺏긴 것이 아니다.
나는 이대통령과 작금의 사태를 동조 방관하는 관료들에게 감히 말한다.
1.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된 국민의 자존심을 회복시키고,헌신짝처럼 버린 검역주권 그걸 찾아와라(캠프 데이비드에 있을 것이다).
2. 은폐, 왜곡, 떠넘기기, 말장난, 물타기 하지 마라. 비겁의 극치다!
3. 당신들의 백성을 더 이상 루머나 선동에 휘둘리는 한심하고, 철없는 인간들로 만들지 마라. 당신들은 그 속에서 나왔다.
4. 변형 프리온, 확률, 유추해석, 가설, 예방 의학, 인수(人獸)공통전염병에 대해 밤새워 공부하라.
5. 정부의 신하로 전락한 언론을 깨워 정도(正道)를 걷게 하라.
6. SRM부위를 푹 고아서(아니 뭐 요리 방법은 알아서 하라)국민들 앞에서 먹어라. 영국 존 검머 농림부 장관은 90년 5월 BBC에 출연, 햄버거를 먹었다. 수년 후 영국은 인간 광우병 환자 발생 최다 보유국이 되었다.
7. 미국은 탐욕을 버려라. 소들을 초원 위에 풀어놓고 동물성 사료를 먹이지 마라. 생명존중 사육만이 인간을 살린다
8. 재협상해야만 한다. 더도 덜도 말고 일본 만큼만 해라.
깊은 후회와 회한은 게을러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