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 영원한 자유인, 니코스 카잔차키스
단 하나 뿐인 삶을 받아,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극점에 올라서도 그는 더 높이 오르기를 원했다. 그러나 날은 이미 저물었고, 그는 크레타의 흙으로 돌아가기 전 다음과 같은 묘비명을 남겼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인류 역사가 더 많은 자유를 위한 투쟁의 궤적이라고 한다면, 그의 삶은 인류 역사의 제단에 스스로 바쳐진 가장 자유로운 제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자유(freedom)란 "통제 받지 않는 상태(state of not being under control)", 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고, 쓸 수 있는 힘(the power to do, say, think, or write as one pleases)"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그는 1885년 12월 2일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태어나 아테네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사전적 정의 그대로 자유롭게 파리와 스페인, 영국, 러시아, 이집트, 팔레스타인 등을 여행하며 호머와 부처와 예수와 니체와 베르그송의 사상들을 섭렵하면서 사랑하고, 고뇌 하고, 현대 그리스의 고전이라고 일컬어 지는 수 많은 작품들을 쓰고, 투쟁하다 1957년 10월 26일 모든 삶의 여정에서 쌓인 삶의 웅장함을 다 비운 후 '나는 자유다.'라는 말을 남기곤 흙으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돌아갔다.
1980년 5월 종로서적에서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 그리스인에게 이 말을'을 처음 손에 잡았을 때부터 나는 몇 년간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후 그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 '성 프란치스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등을 읽어 나갈 때마다, 그가 나에게 가하는 영혼의 채찍질을 온 몸으로 느낄 때마다 느꼈던 절대적 열등감은 나약하고 게으른 나의 영혼을 한 없이 일깨워 주고 밀어 주는 가르침으로 내 삶에서 메아리쳤었다.
'영혼의 자서전(안정효역)'에서 그는 온몸으로 삶의 지향점을 웅변한다. "짐승으로부터 인간으로의 오름길을 따라가려면 고통이 가장 위대한 길잡이다.// 내 영혼을 처음으로 뒤흔든 것은 공포나 고통이 아니었고, 쾌감이나 장난도 아니었으며, 자유에 대한 열망이었다. 나는 자유를 찾아야 했지만, 무엇으로부터, 누구로부터 자유가 된다는 말인가?// 크레타와 그리스의 범주를 넘어 나의 투쟁들은 인류의 역사를 침공했다. 나의 속에서는 선과 악이, 빛과 어둠이, 신과 악마가 싸웠다.// 성자들은 너무 온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신 앞에서 자꾸 머리만 조아리며 설설 길 뿐이었다. 내 몸 속에서는 크레타의 피가 끓어 올랐다. 나는 참된 인간이란 아무리 곤경에 처했어도 신의 앞에서까지도 저항하고, 투쟁하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단정을 내렸다."
"신은 죽었다."고 선포한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에서 역설했던 '초인'의 철학에 심취했던 카잔 차키스답게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며 자신이 생각하는 20세기의 새로운 성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성인들은 구걸을 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그들은 칼의 힘으로 얻었다. 영웅성을 지닌 성자, 그것이 완전한 인간이었다.// 우리들은 개인적인 관심을 초월하고, 편안하고 아늑한 환경을 초월하고, 우리 자신보다 높은 목적을 설정해서 비웃음과, 굶주림과,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땀 흘려 일함이 우리의 의무이다.아니, 달성이 아니라 절대로 쉬지 않고 오른다는 것. 오직 그것만이 삶에 숭고함과 단일성을 부여한다." 카잔차키스에게 있어서 신은 인간의 영혼을 구속하지 않고 해방시키는 신이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을 구체화시켜 놓은 작품이 현대의 성자 슈바이쩌에게 헌정한 '성 프란치스코'다. 카잔차키스는 말한다. "프란치스코는 마지막 중세인이며 최초의 르네상스인이다. 그리고 슈바이쩌는, 추악하고 부정적인 것과 불의가 충만한 현대에서 새로운 르네상스를 알리는 최초의 인물일지도 모른다." 천국에서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의 물질적 복까지도 스스럼없이 달라고 원하는 기복적 신앙이 당당히 뿌리 내리고 있는 이 시대 우리에게 거지의 성인 프란치스코의 입을 빌어 카잔차키스는 경종을 울린다. "주여, 저에게 그 희망마저도 거절할 힘을 주소서. 아, 주여, 당신을 만날 희망마저도 거절하게 하소서. 당신은 아실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오직 그것만이 절대적인 가난의 뜻임을."
추억의 명배우 앤소니 퀸이 주인공을 맡았던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그리스인 조르바'는 모든 인간의 현학적 논리와 위선적인 종교적인 말과 지성을 뛰어넘는 삶의 진실에 도달하여 거침없이 사랑하며 살다간 실존 인물 조르바를 소설화한 작품이다. "인간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조르바?" "글쎄, 자유라는 거지."
영원한 자유인 조르바, 카잔차키스 그는 세 가지의 영혼, 세 가지의 기도를 올린다. "첫째, 나는 당신의 손에 쥔 활이옵니다, 주여.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둘째,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주여.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셋째, 나를 한껏 당겨 주소서, 주여.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 있겠나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