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30분, 어제 저녁 7시30분에 침낭에 들어간 지 꼬박 11시간이 지난 뒤다. 숙면을 취하고 난 후의 상쾌함으로 몸 마디마디가 부드럽다.
숙면은 오랜 시간의 산행 후에 얻는 큰 보상 중 하나다. 한껏 기지개를 켠 후 산장 밖을 나가 보니 밤새 물안개가 호숫가에 내려앉아 자욱한데, 그 안개 속에서 각종 새들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온다. 가벼운 마음으로 화장실을 들르고는 살라미 햄과 콩을 잔뜩 넣고 라면을 끊인다. 매콤한 라면 냄새 때문인지 제임스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뭘 만드는지 물어 본다.
오늘은 트레킹 마지막 날로 7시간의 산행이다. 오후2시에 트랙 끝으로 빅부시 직원이 데리러 오기로 했기 때문에 늦어도 오전 7시30분에는 출발해야 한다. 오늘은 주로 호숫가를 지나는데, 자그마한 반도를 넘어 드는 두 번의 긴 오르막이 있다. 출발지점에서 구름다리를 건너는데, 안개로 덮인 호수가 한국에서 본 것처럼 낯설지 않다. 오전 10시가 넘자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햇빛과 안개의 조화가 더욱 신비스럽다.
2시간 정도 걸으니 작은 시냇물 입구에 모텔 수준의 아름다운 테푸나 산장이 나온다. 이 산장은 현대식으로 새로 지은 깨끗한 건물 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1인용 개인 침대들로 꾸며져 있으며, 다른 거물에는 취사 시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로 들여놓았다. 건물마다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어 주변의 아름다운 숲과 호수를 항상 감상할 수 있다. 3박4일 여정이라면 이 곳에서 하루를 묵어 가는 것이 좋다.
이 곳을 지나니, 호수의 작은 반도를 가로지르는 오르막길이 나온다. 반도의 특징을 이용해서 반도 입구를 그물로 막아 키위를 보로 관찰하는 지역으로 지정해 놓았다. 저녁 시간에 이 곳에 오면 야생의 키위소리를 듣고 실제로 볼 수 있는 확률도 매우 높다.
트랙은 계속해서 오른 쪽에 호수를 두고 걷는데, 흑조, 오리, 송어가 호수면 위아래로 보여 아름다운 수채화 같은 풍경을 이룬다. 마지막 산장인 왕가누이 산장이 나오는데, 오래된 건물이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어 깨끗하다. 이 곳에서 약 45분 가면 배를 타고 트랙을 마감하는 곳이 나온다. 트랙을 완주하고 싶은 마음에 45분 더 걸었다(실은 이 곳에서 1시간 30분 더 가야 46km 완주다). 이 곳에서부터 평지가 나온다. 좌우는 늪지이고, 그 가운데에 진흙탕 트랙이 있는데, 마지막이라 그런지 45분이 길게 느껴진다.
드디어 저 멀리 보이는 구름다리 위에 빅부시 숙소에서 마중 나온 뉴질랜드 청년이 보인다. 처음 나를 트랙 입구에 실어다 준 고물 밴이 고장나서 주인 아주머니 멋진 벤츠 승용차를 가지고 왔단다. 오는 길에 상점에 들러 사과, 고기 파이, 콜라를 들며 한국에서 먹던 선지해장국을 그리워해본다.
아름다운 풍경을 글로 묘사하거나 사각에 틀에 갇힌 사진으로 보여 주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만, 특히 와이카레모아나 트랙에서의 아름다운 새소리와 폐 깊숙이 밀려드는 차가운 산공기를 조금도 담아 드리지 못해 아쉽기 이를 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