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국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몇 차례 초대 받아 간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집집마다 돌아 가며 특별한 음식 한가지씩을 가든에 차려 놓고 대화를 나누다가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다음 집으로 가는 그런 모임이었다. 20년도 더 된 일이라 정확치는 않지만 아마 제목이 'Crazy Buffet'였던 것 같다. 이름처럼 신나게 먹어 가며 10여 집을 돌고 나니 배도 불렀지만 자연스레 어울리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들의 대화는 끝이 없었는데 복장도 성격도 모두 달랐으나 어울리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칵테일을 들고 서서 나누는 서양 남자들의 수다가 한국 아줌마들 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는 것을 그 때 이미 눈치를 채게 되었다.>
<얼마 전 우편함에 반장격인 동네 리더로부터 메모가 있었다. 일 년에 몇 차례 있는 저녁 모임에 와 달라는 것이었다. 음식 한 가지씩을 가지고 참석하는 것이었는데 음식을 준비하기도 마땅치 않고 내용도 잘 몰라 와인 한 병을 들고 갔다. 대부분이 파케하였는데 아시안도 중국인 2명, 일본인 1명, 그리고 나까지 네 명이 있었다. 이사 온 후 처음이라 어색한 마음으로 참석했는데 어울리다 보니 이내 친숙해졌다. 교외지역이라 그런지 모든게 시골스런 느낌이었고 대화 내용도 한참 진행 중인 넷트볼 이야기와 고양이 얘기, Septic Tank(하수처리시설) 관련 사항 등 평범한 것들이어서 분위기가 매우 소박했다.> 서울의 주한미국인 마을에서나 동네 주민 모임에서 받은 공통된 인상은 '그림이 좋다는 것'이었다.
지난 11월 10일 Bruce Mason Centre에서는 '2007 Korean Night' 행사가 있었다.
이번 'Korean Night' 행사도 지난해처럼 다양하고 훌륭했다. 인형극을 비롯 배진형군, 민미란 교수 등 출연진들 대부분이 훌륭한 솜씨와 기량을 보여 주었고 현지인들에게 한국인의 우수한 예술성을 보여 줄 만큼 자랑스런 것들이었다. 그 정도의 큰 행사를 치르려면 경비도 많이 들었을 것이고 한인회장을 비롯한 몇몇 관계자들은 밤샘을 불사하는 노력을 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평소에 "한인회가 도대체 뭐 하는 단체냐?"라든가, "한인회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행사는 좋은 대답이 될 것이다.
그런데 2002년 처음 Korean Night 행사를 기획한 것은 한마디로 '현지화'에 목적이 있었다. 그 때까지 매해 진행 되어 온 '한인의 날'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행사였기에 현지화를 위한 이벤트를 절감하게 된 것이었다. 때문에 제목도 '한인의 날'은 우리말로, 'Korean Night'는 영어로 부르기로 했고, 'Korean Night' 행사 때는 우리의 전통 문화인 한복, 부채춤, 판소리, 다도 등 외에도 현대자동차, 삼성모발폰, LG TV와 같은 자랑스런 우리의 상품들을 행사장에 전시해 선 보여 왔다. 그리고 수상을 비롯, 장관, 국회의원, 시장들 외에도 경제, 문화, 예술계 등 각 방면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거 초청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행사에서는 그런 Korean Night 행사가 '한인의 날' 행사와 뒤섞이어 변질된 느낌이었고, 소위 VIP들 조차 대부분이 참전 용사부부들인 점이 참으로 아쉬웠다.
그렇지만 이번 행사에서 특히 그림이 좋은 두 개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하나는 최재경씨가 이끄는 'Ko-Ki 주니어 재즈밴드' 그룹이었다. 우선 현지인과 코리언 주니어들의 협연을 통해 자연스레 하모니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었고 보기에도 흐뭇했다. 지휘자 최재경씨의 경쾌하면서도 적절한 제스쳐는 조용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하는 노련함이 엿보였다. 또 하나의 그림은 우리의 꿈나무 소녀 3인방이 이끄는 '피아노 트리오'였다. 김윤경, 강민지, 이은아- 세 소녀가 꾸며 내는 그림 같은 협연은 초여름 밤의 무대를 환상의 도가니로 몰아 넣기에 충분했다. 우선 세 소녀가 각기 다른 악기와 독특한 연주로 독창성을 발휘하면서 화합과 조화를 창조해내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자랑스러웠다. 특히 다른 연주자들과의 호흡을 일치시키기 위한 피아노 이은아 양의 눈매와 제스쳐는 앙징맞게 꽃 피워진 프로의 기질을 보여 주었다.
말 끝마다 '옆집 키위가 어떻고'하면서 현지인들하고 대단한 교류라도 하는 것처럼 얘기하거나 키위라면 꺼벅 죽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담을 쌓고 지내는 이들도 많다.
우리는 어차피 남들이 사는 땅에 같이 살려고 찾아 왔다. 그래서 그들 속에 파고 들어 현지화 해야 할 당위성이 있는 것이고 현지화 하는 길은 자연스럽게 더불어 사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Ko-Ki 주니어 재즈밴드'와 '피아노 트리오'는 우리 기성세대들에게 자연스런 현지화의 방법을 보여 준 셈이다. 참으로 고맙다. 희망의 꼬마 천사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