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 왜 우리는 튀어야만 하는가
튀기 위해 뛰는 사람들-이는 여지 없이 한국인들이다.
지난 주 교민지들은 '노스쇼어타임즈 여론광장'에 한국인에 대한 온갖 비하성 발언이 계속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중에는 "뉴질랜드에 머물도록 해 주니까 한국인들은 뉴질랜드사회에 기여할 생각도, 영어를 배울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자기네들끼리만 똘똘 뭉쳐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을 들어 달라고 떼를 쓴다는 것이다."는 내용도 있었다.
자의적 편견에 몹시 속이 상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을 탓하기 전에 "왜 한국인들은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유독 미움을 받는 것일까?" 하는 안타까움이 이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오래 전 본 칼럼에 '튀는 한국, 왕따 코리아'라는 제목으로 비슷한 내용을 쓴 적이 있다.
같은 이민자들이라도 코히마라마를 중심으로 정착한 일본인들은 튀지 않고 조용히 살아 가고 있는데 키위들이 그 일본인들에 대해 싫은 소리 하는 걸 거의 듣지 못했다. 우리의 5배가 넘는다는 중국인들도 한국인만큼 미움 받는 것 같지는 않고 인디언, 필리피노들도 비교적 현지인들과 잘 조화해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아시안 중 한국인들이 특별히 수가 많다거나, 얼굴이 못 생겼다거나, 이민 역사가 짧다거나, 문화가 뒤떨어지지도 않는데 유독 폄하내지는 냉대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우리는 깊이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뉴질랜드에만 국한 된 얘기는 결코 아니다. LA에서, 시카고에서, 도꾜에서, 베이징에서, 시드니에서, 호치민에서 수 없이 왕따 당하고 있는 '슬픈 우리 현실'인 것이다.
그 동안 한국인들이 튀는 일은 너무나도 많았다. 미셸 위, 황우석, 붉은 악마, 버지니아대 총기사건, 아프간 사태와 신정아 파문 등. 심지어 얼마 전 LA에서는 몰래 개를 잡아 먹다가 발각 되어 사회문제화 되기도 했다. 물론 튄다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조용한 것 보다 튀어 욕 먹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지금 한국에서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 자그마치 102명이나 나섰단다. 얼마나 과시욕이 많은 사람들인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그런가 하면 요즘 뉴질랜드에서는 '어글리 코리언들'이 수두룩하다.
<몇 일전 인터넷에 '더니든에서 길가에 방뇨를 하면서 한국말로 크게 떠드는 사람들을 보며 얼굴이 화끈거렸다'는 글이 있었다. 언젠가 나도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는데 어두운 밤에 40대쯤 된 술 취한 한국인들이 길가에 차를 세워 놓고 바퀴에 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튀는 한국인은 많은데 안타깝게도 사회참여도는 매우 낮다.
세계 각국의 소수민족 중 한국인들이 가장 선거에 관심도 없고 투표율도 저조하다는 것이다. '후보자들 중 누가 누구인지 몰라 투표하기 어렵다'는 심정에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잘 몰라도 경력이나 인상만을 보고서라도 투표를 해야 한다. 표를 행사하지 않으면 같은 시민으로 대접도 안 해 주고, 우리는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9월27일, 도미니언 로드 666 번지에 있는 컨벤션센터에서는 '죤 뱅크스'를 비롯한 지방 선거 출마자들이 모여 지지대회를 열고 있었다. 중국인들을 위시해서 많은 아시안들이 참석했지만 한국인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어떤 특정인이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라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결국 죤 뱅크스가 당선 되었는데 '시장 일을 하면서 누구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되겠는가'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물론 소리 없이 묵묵히 현지화에 성공하는 자랑스런 한국인들이 상당수 있다.
<K사장은 7년쯤 전부터 오네항가의 모 은행에서 청소를 시작했다. 한 두 해 청소하는 것을 눈 여겨 본 은행 매니져가 "내가 은행에서 근무한 후로 당신처럼 성실하게 청소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연말에 감사장과 함께 선물을 전했고 다른 사업장까지 소개해 주었다.
또한 하윅, 단네모라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인 중에 전기검침원들이 여러분 있다.
'엘림 교회'에 다니는 한 분이 성실하게 근무하자 그가 추천한 사람을 한 명, 두 명 쓰다 보니 꽤 여러 명이 되었고 이제 한국인이라면 '일 잘하고 성실한' 사람들로 인식 된 것이다.>
지금도 데어리나 빨래방, 그리고 농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분들도 있고, 이제 사회에 갓 나온 젊은 이들도 있다. 행여라도 이런 사람들조차 일부 몰지각한 '어글리 코리언'들로 인해 '이민오지 말았으면 싶은' 민족으로, 도매금으로 비난 받을까 봐 두렵다.
9, 10월이면 으레 찾아 오는 꽃샘 바람 때문에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그런 속에도 새 싹은 소리 없이 그러나 틀림없이 피어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조용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만이 성공적인 현지화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