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 돈이 많다고 다 부자는 아니다

[358] 돈이 많다고 다 부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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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이 너무 없어도 불쌍하지만, 돈이 있는데도 쓸 줄 모르는 사람 또한 불쌍하다.

  < 20대 초반에 논산에서 단 돈 5천원으로 상경한 P라는 친구가 있었다. 청소년 시절 그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다. 하지만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아르바이트로 대학을 마쳤고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부동산을 통해 돈 불리는 방법을 터득했다. 처음 삭월세에서 시작해서 몇 번 전세를 전전하더니 게딱지만한 집을 그것도 월세를 안고 샀다. 그 후로 이사할 때마다 조금씩 큰 집으로 불려 나갔고 그 때마다 방이 3개에서 4개, 5개로 불어 났다. 식구도 네 식구로 불어 났지만 방은 결코 2개 이상 쓰지 않았고 나머지는 월세를 놓았다. 집도 가능하면 직장에서 걸어서 20분 이내에 구했고 따라서 차도 필요 없었고 교통비도 들지 않았다. 술, 담배는 물론 커피, 군것질도 하지 않았고 옷도 여름용, 겨울용 각 한 벌씩이 고작이었다. 소비자 천국이었던 한국의 80-90년대를 그는 그렇게 절제와 내핍 속에 잘도 견뎌 냈다. 20년 사이에 무려 20번 정도 이사했는데 꽤 넓은 집으로 옮겼을 즈음 동네가 개발 붐을 타고 헐려 나가면서 집 앞이 큰 도로가 되었고 앞 뒤로 소형 빌딩들이 들어섰다. 결국 P도 집을 헐고 7층 짜리 빌딩을 짓더니 그 꼭대기 옥탑 방에 살게 되었다. 진정 P는 자수성가의 표본이었고 그러는 사이 50대가 되고 자녀들도 대학에 갔다.

  직장 봉급은 그야말로 껌 값이 되었고 건물 임대 수입으로 매달 몫 돈이 불어날 때마다 서울 변두리에 땅을 사러 다녔다. 그렇게 재산은 불어 갔지만 직장에서도 동네에서도 그와 어울리는 사람은 없었다. 퇴근하면 집에 틀어 박혀 TV를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고 돈이 될 만한 부동산을 찾아 다니는 게 그만의‘화려한 외출’이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수전노로 인식이 굳어져 가는 동안 애들이 성년이 되었고 서서히 불평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부인은 돈 모으는 재미에 남편과 손발이 맞았지만 한창 '소비세대'인 자녀들에게 노트북도, 모발폰도, 자동차도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몇 년 전 한국 나갔을 때 이미 부동산 갑부가 되어 있는 그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안색이 좀 쓸쓸하고 불안 해 보였다.

  “늙어 가면서 건강이 예전만 같지 못하고 다 쓰지도 못할 돈을 무엇 때문에 그 고생하면서 모아 왔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 자꾸만 인생이 허무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이제라도 돈을 좀 써가면서 남들처럼 재미있게 살아 보고 싶은데 뭘 사는 것도 익숙치 못하고 해외여행이라도 다니고 싶어도 솔직히 비행기표를 어떻게 사서, 어디로 여행을 해야 할 지 모르고 겁부터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2년 후 롯데호텔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옷차림부터 너무나 변해 있었다. 우선 만나자마자 밥부터 샀고 눈 빛이 달라졌고 얼굴에 윤기가 흘렀다. 여기서도 뉴질랜드판 P를 꽤 많이 보게 된다. 그들 중엔 돈을 꽤 많이 가져온 이들도 있고 여기와서 제법 돈을 모으거나 성공한 사람들도 보인다. 그런데 그들 중 상당수가 돈을 쓸 줄 모르면서 불안 해 하고, 외로워 하고 재미 없이 살아 간다. 돈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소중하다. 하지만 돈을 잘 쓰는 것은 낭비와는 전혀 다르다. 행복을 위한 자기 관리이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데 요구되는 '필요충분조건'인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BC 334년 봄 동방 정복을 위해 '헬스레폰토스 해협(지금의 다다넬즈 해협)'을 건널 때 약 4만 명의 군대를 먹일 양식은 겨우 1개월분 뿐이었다. 그러자 그는 전 재산을 전쟁 비용으로 내 놓으면서 이를 걱정하는 측근들에게 “나는 희망만 있으면 된다”고 설득시켰다. 그는 이 희망을 자산으로 결국 동방세계를 평정하고 수십, 수백배의 부를 거둬 들였다. 물론 모두가 알렉산더가 될 수도 될 필요도 없다. 단 우리가 가진 만큼의 재산을 적절히 쓸 줄 아는 지혜는 필요한 것이다. 무조건 근면, 검소, 내핍만을 미덕으로 알던 60년대식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과, 자기자신의 차와 의복과 몸치장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한 번쯤‘평소에 검소하기 만한, 뉴질랜더들의 습관화 된 도네이션 정신과 적절한 소비성향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난 6월 6일 뉴질랜드 이민부는 이민법을 개정했다. 이민에 관심 있는 사람 중 이 범주(Category)안에 드는 사람 그리고 그 중에서 특별히 뉴질랜드를 택해서 올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 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먼저 와 있는 소수의 부자들과 앞으로 들어 올 좀 더 많은 부자들이 한국 교민으로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발휘한다면 참으로 행복하고 살 맛 나는 교민 사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돈이 많다고 다 부자는 아니다. 돈을 제대로 쓸 줄 알아야 진정한 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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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3

[358] 슬라이스(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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