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30분 숙소에서 출발한 승합차가 트랙의 시작점인 94번 도로의 디바이드(The Divide)라는 지명을 가진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준다. 가는 중에 여러 아름다운 호수와 서던 알프스의 장엄함을 볼 수 있다. 넉넉잡아 1시간만에 디바이드에 도착한다.
이곳이 처음인 사람들은 세계적인 드라이빙 코스인 94번 도로를 따라 이 도로의 끝인 밀포드 사운드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내리는 것이 좋다. 작은 화장실과 의자가 마련된, 잘 갖추어진 대피소가 있는 출발점은 루트번 트랙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한산하다.
나무와 이끼가 가득한 아주 좁은 오솔길을 지그재그로 1시간 이상 올라간다. 이 곳에서 흥미있는 사이드 트랙이 나오는데, 바로 키 서밋(Key Summit)이다. 무거운 배낭을 입구에 세워 두고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왕복 1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트랙인데, 멀리 산속의 아름다운 매리온 호수와 산정상의 특색있는 고산늪지 식물을 볼 수 있다.
잘 만든 트랙 이정표와 나무로 보강한 길은 뉴질랜드 정부의 손길이 이런 깊은 곳까지 잘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안개가 많거나 구름이 가득해서 시계가 좋지 않을 때에는 주위의 훌륭한 경치가 보이지 않으므로 그냥 지나치도록 한다.
키 서밋에서 하산 후 약 15분 정도 더 가면 하우든 산장(Howden Hut)이 나온다. 이 산장 앞에는 하우든 호수가 있어 깨끗한 물과 함께 멀리 보이는 산이 매우 아름답지만, 해발 고도가 비교적 낮아 샌드플라이(sandfly)가 극성을 부린다.
이것은 사람의 피를 빠는 2~3mm 크기의 작은 곤충으로, 물리면 매우 가렵다. 현지에 사는 사람들은 적응이되어 별로 가렵지 않지만, 뉴질랜드를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는 괴로울 정도로 가렵다. 그러므로 뉴질랜드 남섬의 남부와 서부를 방문할때는 샌드플라이를 쫓아 주는, 몸에 뿌리는 약을 구입해야 한다. 뉴질랜드의 약국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다.
호수를 보며 가져온 육포와 커피를 든 후에 샌드플라이에게 물린 팔뚝을 긁으며 다시 출발한다. 계곡마다 흐르는 물은 아주 연한 옥색을 띄며 수온이 매우 차가운데, 수질이 매우 좋아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생수보다 더 차고 부드러운 맛이 난다. 흐르는 물이면 트랙의 아무 곳에서나 떠 마셔도 좋다.
1시간 남짓 걸어가니 저음의 커다란 폭포 소리가 들린다. 바로 트랙의 명물 중 하나인 이어랜드 폭포(Earland Falls)다. 폭포 밑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는데, 하나는 폭포의 물줄기를 몸으로 느끼도록 바로 밑으로 가게 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폭포수에 젖지 않도록 멀리 돌아가는 길이다. 물론 나는 폭포가 쏟아지는 바로 밑으로 지나갔다. 폭풍같이 으르렁거리는 폭포 밑을 지나려니 그 폭음과 휘몰아치는 바람에 상체가 반은 굽혀져 절로 겸손하게 된다. 아주 시원한 신고식을 한 셈이다. 폭포 상단부가 구름에 가려 폭포 윗 쪽이 보이지 않아 더욱 신비하게만 보인다.
산비탈을 끼고 올라가는 이 곳부터는 고도 때문인지 나무가 별로 없어 시야가 시원하게 터진다. 커다란 피요르드 계곡 저 너머로 눈 덮인 산들이 보이고, 몇 대의 경비행기가 우리 보다 낮은 높이로 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