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쉘터 산장 루트는 완만한 경사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트랙이다. 중간까지는 길 상태가 좋고, 이후부터는 루트(route)로 되어 있어 약간 주의해서 찾아가야 한다. 볼쉘터헛은 마운트 쿡과 마운트 타스만, 그리고 볼 빙하와 타스만 빙하를 모두 볼 수 있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그 풍광의 스케일이 대단히 크고 아름답다.
언덕 끝에 위치한 이 산장은 10명 정도 수용하는 작은 곳이지만 안전을 위한 무선장비와 식수, 화장실 등을 갖추었다. 다소 불편해도 경관이 뛰어나 며칠을 머물고 싶은 잊을 수 없는 곳이다.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가지고 가서 이삼일 지내면 좋을 곳이라 생각한다.
출발 전에 화장실에 들러 몸을 가볍게(?) 하는 등 트래킹을 준비한다. 캠퍼밴에서 미리 챙겨놓은 라면과 랩으로 싼 찬밥과 진공포장 된 고추지, 라면에 넣을 계란을 배낭에 싼다. 그 외에 행동식으로 육포, 껌, 초콜릿과 생수 4병을 가져간다. 일행은 모두 4명. 집사람과 큰 아들, 작은 아들까지 우리 식구 4명이다.
출발 전 모두 물을 잔뜩 마셔 땀을 흘릴 준비를 하고는 각자의 준비물을 챙기고 신발끈을 점검한다. 준비물이 거의 없어 먼저 점검을 끝내고 테이블에 앉아 있던 막내는 근처에 있는 조그만 새를 어르고 있다. 빵가루를 조금 던져 줬더니 테이블 위로 올라와 빵가루를 얻어먹는다.
빙하를 타고 내려온 차고 센 바람이 있을 법도 한데 예상 외로 차분하고도 맑은 날이다. 조그마한 차량이 지나갈 정도로 잘 정비된 자갈길이 시작된다. 길 좌측에는 작은 시내가 흐르는데 물이 아주 차다. 우측으로는 타스만 빙하에 깎여 내린 퇴적물로 막혀 별다른 조망이 거의 없다.
타스만 빙하는 뉴질랜드 최대의 빙하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규모이며, 푸카키 호수의 수원이 되고 있다. 빙하 표면에 흙과 돌이 덮여 있어 처음 보는 사람은 빙하를 눈앞에 두고도 알지 못한다.
트랙은 시골길 넓이지만, 바닥은 흙이 거의없이 돌로만 다져져 있어 발목에 무리가 많이 오므로 복숭아뼈 위까지 오는 등산화를 착용해야 한다. 길은 완만한 경사라서 큰 힘이 들지 않는다.
30여 분이 지나 길이 넓어지는데 경고문이 서 있다. ‘낙석 구간이므로 중간에 서지 말 것'이라 적혀 있다. 엄포가 아님을 증명이나 하듯 밥솥만한 돌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좌측의 마벨 산(Mt. Marbel)이나 로사 산(Mt. Rosa)이 워낙 경사가 심한 데다 지반에 흙이 거의 없어 나무가 자란 곳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지난 겨울 내린 폭설로 인해 산의 경사부에 눈이 많이 쌓여 더욱 더 불안정한 상태가 된 것이다.
전방 길의 좌우에 낙석이 떨어지는지를 살피며 부지런히 걸어간다. 막내가 배낭끈을 풀었다 당겼다, 이리저리 만지는 폼이 힘들어 하는 눈치다. 볕은 따가운데 바람은 차가워서 옷을 입을 수도 벗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뉴질랜드의 이러한 날씨에는 더위가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햇빛이 강해서 자외선을 조심해야 한다. 올해에는 남극의 오존 구멍이 작아져 자외선 수치가 줄어들었다는 기쁜 소식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강렬한 햇빛은 순식간에 화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할 대상이다.
고도가 조금씩 올라가니 눈이 희끗희끗 보이기 시작한다. 수십 톤은 될 듯한 눈 사태의 흔적이 자주 나타난다. 눈사태가 난 지 꽤 시간이 지난 듯, 눈 위에는 먼지가 많이 쌓여 있다. 낙석 구간을 겨우 지나자 막내가 뭔가를 먹자며 잠시 휴식할 것을 제안한다. 풀 한 포기없는 황량한 곳이지만, 커다란 낙석들이 나무 역할을 대신해 준다. 마침 집채만한 바위가 있기에 그 그늘 밑에 앉아 가져온 육포를 먹고 물을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