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 북방 변경(邊境)의 요새(要塞) 근처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노인의 암말이 오랑캐의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자 노인은 조금도 애석한 기색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福)이 될는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훌륭한 수말 한 마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치하(致賀)하자 노인은 조금도 기쁜 기색이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화(禍)가 될는지?”
그런데 어느 날 말 타기를 좋아하는 노인의 아들이 그 수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자 노인은 조금도 슬픈 기색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오랑캐가 쳐들어오자 마을 장정들이 이를 맞아 싸우다가 모두 전사하였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무사하였다.
위 이야기는 중국의 고전(古典)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이야기로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항상 변화무쌍하여 미리 헤아릴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한 번 생각해 보자.
이야기에 나오는 마을 사람들은 세상에서 구분 지은 대로 좋은 일이 있으면 기뻐하고 나쁜 일이 있으면 슬퍼한다. 그러나 주인공인 노인은 좋은 일이라 기뻐하지 않고 나쁜 일이라 슬퍼하지 않는다. 어느 쪽에도 마음을 두지 않는다. 좋은 일을 당하든 나쁜 일을 당하든 마음에 흔들림이 없다.
삶을 살다 보면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면 잘 되었다 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망한다. 그러나 나의 바람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때의 상황조건에 따라 그냥 순리대로 흘러 되어 갈 것이다. 잘 되고 못 되고가 없다. 순리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이다.
이 우주에 있는 일체는 순리의 존재이고 일어나는 일체는 순리를 벗어날 수 없다. 사람도 순리의 존재이고 그 삶도 순리를 벗어날 수 없다. 나의 강한 의지(마음)로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일도 순리적으로 될 만하니까 된 것이다. 순리에 맞지 않는 일이라면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순리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이루려 하면 순리를 거스르게 되어 고통, 번뇌가 따른다. 역리적 현상(사고, 질병, 우환)이 생긴다. 일시 이루어졌다(사실은 그렇게 여길 뿐이다)해도 그것은 역리이기 때문에 결국은 무(無)로 되어 순리로 되돌아간다.
결국 나의 의지(마음)는 순리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순리의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삶은 순리대로 물 흐르듯 흐른다(이루어진다). 걸림도 없고 막힘도 없다. 그냥 살고 그냥 있다. 그런데 과연 사람은 순리의 존재로서 순리의 삶을 살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해야 순리의 삶을 살 수 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