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이 있다. 소문 뒤에는 반드시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속담중에는 현실에 딱 들어 맞는 내용들이 많아 선인들의 기지나 풍부한 표현력에 놀란다. 그런데 요즘처럼 변화 무쌍한 세상이 되자 속담도 일부 수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예를 들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면 지구도 바뀐다”로,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발 없는 문자메시지가 만리 간다”로, “호랑이가 물어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호랑이를 보면 사람이 물어 간다”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키위들에게 배워야 할 것들도 많지만 특히 ‘시간 개념’과 ‘프라이버시 존중’을 들고 싶다. 우리 어릴 때부터 존재한 ‘코리안 타임’은 끈질기게 계속되었고, 이민 짐에까지 넣어 왔다.
내가 속해 있던 로터리 클럽은 매주 월요일 6시에 정기모임이 시작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5시 30분부터 모여 와인이나 칵테일을 마시면서 담소한다. 시작 전 30분동안 아무 때나 오면 되지만 6시가 되면 칼같이 모임을 시작한다. 한 두명 늦은 사람은 어김없이 지각 벌금을 물어야 한다. 거기 비하면 교민들의 모임은 6시에 시작한다면 6시쯤부터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30분 정도가 지나야 다 도착한다. 키위들은 시작전이나 식사 중 한국 아줌마들 못지 않게 많은 수다를 떤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이나 ‘니콜 키드먼’ 같은 국제적 유명 인사들의 스캔들은 안주감이지만 주위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는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다.
지난 달 회의가 있어 영사관에 갔다가 누군가가 “웰링톤으로 이사 가신다면서요?”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는 머리카락 숫자가 조금 부족해서 바람을 싫어한다. 그래서 대여섯차례 웰링턴에 갔을 때마다 “바람 때문에 여기서는 살기 힘들겠구나”하고 생각했었다. 크라이스쳐치나 황가레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왠 웰링톤이란 말인가? 놀라운 것은 집을 팔려고 내 놓았을 뿐이었는데 어떻게 웰링톤으로 이사한다고 짧은 시간에 구체적으로 잘못된 소문이 나는가 말이다. 얼마전 가깝게 지내는 50대 인사를 만났다. 평소 매우 신뢰하는 인품으로 한 달에 한번 정도 식사하면서 인생 얘기도 하고, 여러가지 정보도 교환하는 그런 사이이다. 그런데 얼마전 그 분에 관해 “꽃뱀한테 물려 돈을 뜯겼다”는 상당히 그럴듯하고 해괴한 소문을 듣고 황당했었기에 만났을 때 물어 보았다. 그런데 말을 꺼내자 마자 “꽃뱀과 관련된 소문 말이죠?” 하고 먼저 얘길한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나는 그 사람을 만난 적도 없고 심지어 알지도 못한다’’고 명쾌하게 털어 놓아서 같이 한 바탕 웃었다. 모 기업인, 모 변호사, 모 식당, 심지어는 어떤 목회자와 교민지에 관한 소문들까지 무성하다. 좋건 나쁘건, 때로는 진실이든, 아니든 소문이 무섭게 번져 나가는 것이 교민 사회이다.
이제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도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아니면 말고’식의 마녀 사냥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 소문 당사자는 물론 그 소문이 돌아다니는 교민 사회 자체에 득이 될 게 없다. 물론 그런 악성루머나 지탄의 원인 제공을 한 경우는 인과응보라 하겠지만 사실도 아닌 일을 악의적으로 퍼뜨리는 사람에게 많은 경우 부메랑으로 되돌아 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난 달 리뮤에라에 있는 정원 교회에서 ‘이재철목사 초청예배’가 있었다. 이 목사는 “한 교회에서 10년이상 목회하지 않겠다”, “자체 교회 건물을 갖지 않겠다”는 등 스스로와 신도들에게 한 약속을 지켰고 ‘회복의 목회’ 등 저서를 통해 바른 목회 방향을 제시한 분이기에 특유의 조용하면서도 호소력있는 목소리만으로도 신도들의 영혼을 깨우치는 카리스마를 느끼게 했다. 그는 소위 ‘열린 예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예배는 내가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치기 위한 것이므로 요란하기보다 경건하고 신성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또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그리스도는 내가 시체가 되었을 때 구원해 주시는 분임을 믿지 않고 이 세상에서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갈파했다. 그러면서 이 땅의 교회들이 성공하는 것은 “교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느냐가 아니라 어떤 존재들이 모여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남의 집 굴뚝에 연기가 나건 말건 지나친 신경은 자제하는 생활이 아쉽다. 밤에 내일 할 일을 메모해 놓고 자는데 다음 날 확인할 때는 2/3도 채 못 처리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내 할 일도 많은 세상인데 남의 일, 남의 형편에 지나치게 관심 가질 여유가 어디 있는가!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발 닦고 앉아 ‘소문난 칠공주’의 미칠이나 보면서 한바탕 웃는 게 좋을 것이다. 미칠이 할머니와 함께 돌리고 돌리면서 운동이나 하시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