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씨 좋은 일요일 늦은 오후, 차나 마시러 나가자는 친구의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아주 사소한 일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지금 나이테가 적잖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꽤 괜찮은 일상의 행복이기에 서둘러 미션베이에 나가 본다.
휴일마다 밖으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차 댈 곳이 마땅찮아 몇 번 되돌아 와야만 했던 일을 떠올리며. 그러나 오늘은 늦은 시간이니 이미 돌아간 사람들도 있으리라 짐작하고 과감히 그 곳에 들어섰다. 허지만 역시나 다. 길 주변부터 빼곡히 들어선 차들, 파란 들판에는 얼룩처럼 수많은 일파가 흩어져 있다. 지루하리만치 질금거리던 날씨가 모처럼 화창하니 미션베이는 파도처럼 사람들이 출렁댈 수 밖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차장으로 들어서 바쁘게 눈동자를 굴리는데 이게 웬 횡재인가! 빈 자리 하나가 빠끔히 우리를 기다리는 듯 비어 있었다.(오늘은 재수가 좋은 날이네) 벌써 아이처럼 기분이 들뜬다. 차 문을 열자마자 너무도 시원한 바람이 휘익 가슴으로 와 안긴다. 벗었던 웃옷을 걸치고 단단히 앞섶까지 여미며 마음을 열어 주는 바다와 마주 서 본다. “바로 이거야”바다에 오면 찌든 내 영혼이 샘물처럼 맑아지는 것같은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유유히 떠 있는 돛단배들, 모터보트, 몸집 큰 페리가 여유롭게 지나간다. 물결은 잔잔하고 평화스럽게 그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다. 성급한 젊은이들이 옷을 벗고 물속에서 첨벙댄다. 모래사장에 딩구는 앳된 남녀 한 쌍. 사람들 의식하지 않고 제 집 안방에서처럼 애무 행각에 정신이 없다. 그런걸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는 우리들 자신을 보며 그새 우리는 서양물이 들은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바로 앞에서는 누군가가 흘려 놓은 칩스를 쪼아 가느라 갈매기들의 한 무리가 아우성이다. 몸집 큰 갈매기 등쌀에 새빨간 다리를 가진 작은 갈매기들은 주춤거리며 안타까운듯 그들 주변에서 서성거릴 뿐이다. “바짝 다가가서 함께 쪼아 먹어”강자 앞에서 피해를 보는 약자의 세상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인간세계와 똑같다. 내 연민을 보는 것같아 혼자 피식 웃는다.
넓은 분수대에서 시원하게 물줄기가 뿜어대고 그 주변 잔디밭엔 온통 사람꽃들로 화사하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담소하는 팀, 걸음마 겨우하는 아기는 제 흥에 취해서 인파속을 헤집고 어디론가 마냥 줄달음을 쳐 어른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둘러서서 공을 차는 아이들을 포함해 모두가 자연의 너그러운 품에 안겨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그 행복을 조금 나눠 가지려고 우리도 이곳에 나오지 않았나! 사람에 떠밀리듯 천천히 잔디밭 가운데 오목한 카페로 발길을 옮긴다. 오늘은 정말로 사람이 많구나. 아시안들이(주로 중국인) 떼지어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의 어느 공원에 서 있는 것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아담한 홀 밖으로 넓게 둘러쳐진 담장안 잔디밭엔 웬 파티? 밴드음악이 흘러 나오고 젊은 이들 쌍쌍이 몸을 흔들며 경쾌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아마 대학생들의 야유회인 모양이다. 중후한 몸매를 가진 노년의 신사가 그들 틈에 섞여 있는 게 유독 눈에 뜨였다. 교수님일까?
키가 작은 동양여성과 춤을 추는 게 너무 어울리지가 않아 이색적으로 돋보인다. 그들 틈을 비집고 유유히 홀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우리의 두둑한 배짱은 우리도 너희들 때가 있었다는 자만이었을까?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그들 춤 속으로 마냥 시선이 빨려 들어갔다.
청바지에 배꼽티를 입은 젊은이들이 가볍게 힢을 흔들어 대며 남자들과 스탭을 맞춘다. 그들이 뿜어내는 신선한 열기가 보는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져 온다. 흥에 취한 어린 아가씨가 끝내 참지 못하고 엄마 손을 이끌고 한 몴을 한다. 담장 넘어 구경꾼들도 도취된 듯 바라보다가 용기있는 커플들은 저들과 그 대열에 동참해 함께 즐긴다.
무한대의 가능성에 도전해 가는 탄력있는 몸 짓, 그 젊음이 좋다. 그 박력이 마냥 부럽다. 그 넘치는 활력과 생동감에 시선이 빨려 들어가 우리는 말을 잃었다.
저건 왈츠, 이번엔 도돔바야, 춤을 아는 친구는 내게 눈길 한 번 안주고 혼자 웅얼거리며 무엇을 찾아 헤매는 눈빛일까? 잃어버린 청춘을? 아마 그 옛날의 자신과 만나고 있는 게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