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으로 ‘RH-B형’이 있다면 성격형으로는 ‘RS-B형’이 있는 것 같다.
요즈음 한국에는 ‘넷피플’이니, ‘웰빙족’이니, ‘아침형 인간’이니 하는등 그 사람의 활동 스타일이나 생활 방식에 따라 종류별 또는 집단적으로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주는 경향이 있다.
“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라는 서양 속담에는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가 모두 내포 되어 있다. 긍적적 의미로는 “늘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잡념을 가질 틈이 없고 오로지 발전만 한다.”는 뜻이고, 부정적 의미로는 한 곳에 정착할 줄 모르고 이리저리 돌아 다니기 때문에 부와 신뢰가 쌓이기 힘들다는 뜻이다. 즉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부정적 의미로 바쁜 사람을 가리켜 웹스터사전은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A person who too frequently changes his occupation or who never settles in the place will not succeeded in life.(너무 자주 직장을 바꾸거나, 한 곳에 결코 정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 성공할 수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을 ‘Rolling Stone–B형인간’(줄여서 ‘RS-B형’)이라 한다면 교민사회에도 ‘RS-B형’형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A라는 40대 초반의 남자가 있다. 뉴질랜드에 혼자 들어와 팔방미인격으로 돌아 다니는데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한국에서 어느 직장, 심지어 미국계 어느 회사에 다녔다면서 다양한 경력을 자랑했었다. 그렇게 다양한 능력과 화려한 경력을 겸비했다면 지금쯤이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거나 돈을 많이 벌었어야 하는데 왜 비교적 젊은 나이에 혼자 외롭게 들어와-이런 표현을 쓰는 이유는 뭔가 신뢰가 안가고 ‘구르는 돌’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여기저기 수 없이 돌아다니는가 하는 점이다. 그의 첫 인상은 누구하고나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친교의 달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단체, 저조직, 심지어 영사관까지 들락거리고 부지런히 행사장이나 세미나장을 찾아다니며 수많은 사람과 사귀려고 애쓰는데도 시간이 갈수록 깊게 교류하는 친구는 줄어들고 결국은 ‘신뢰 받지 못할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다. 50대 중반의 B씨가 있다. 그는 아마 오클랜드에서 가장 바쁜 사람중의 하나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말도 빠르고, 걸음도 빠르고, 두뇌회전이 그렇게 빠른 사람도 별로 보지 못했다. 어찌나 바쁜지 만나자마자 엉덩이 한쪽을 1cm쯤 들고 비스듬히 앉아 벌써 떠날 준비를 하고 얘기한다. 수 많은 단체나 회사나 조직을 만들고 지금도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돈을 벌거나 크게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지금의 비즈니스는 비교적 잘 진행이 되는 것 같고, 그렇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도 더 이상은 Rolling Stone 나이는 지난듯 싶으니까.
C라는 중국인이 있다. 그는 아침 6시에 집을 나와 저녁 7시까지 사무실에서 일을 한다. 틈틈이 방송에 나가 대담을 하기도 하고 정당활동도 하고 이곳 저곳 투자처를 찾아 나서기도 하며 수시로 어디서나 모발폰을 걸거나 받고, 사람들을 만나며 돌아 다닌다. 약속을 해서 만나 보면 식사중에도 더블 미팅을 하거나 만난지 10여분만에 급한 일이 생겼다면서 먼저 떠나 버리거나 다른 사람을 중간에 합석시키거나 한다. 다음날 그일에 대해 화를 내면 백배 사과하지만 다음번에 만나면 또 비슷한 상황을 연출한다. 심심하면 전화를 걸어 오고 전화 도중에도 어김 없이 다른 전화가 와서 중도에 끊거나 다시 하거나 한다. 그러던 그가 언젠가 오클랜드대학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몇번 병문안을 가 보았는데 그 많던 친구들은 커녕 식구들조차 한번도 보지 못했다. 내가 며칠전에 갖다 준 꽃이 시들어 꽃을 바꿔 주면서 물었다. “아니 왜 그 많은 친구들이 병문안을 안 오죠? 그런데 그렇게 물어 보는 동안에도 또 어디론가 모발폰을 누르고 있었다. 조금 후에 그가 얘기했다. “당신만이 진짜 친구인 것 같다. 나쁜놈들 한번 와보지도 않다니!” 해외에도 자주 나가는 편이고 오늘 오전에도 전화해서는 한국과 홍콩을 거쳐 지금 막 도착을 했다고 알려준다. 중국판 ‘RS-B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RS-B형’의 공통점은 바쁜 생활에 비해 별로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교민사회에도 여러 직함을 갖거나 여기저기 발을 걸쳐 놓은 사람들도 있고 그 중에는 대단히 왕성한 활동력을 가지고 제몫을 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이런 경우는 ‘RS-A형’) 대부분 영업에 이용하거나 과시욕일 뿐이다. 사람은 능력과 시간에 한계가 있는 법, 적당히 활용하고 봉사하되 다른 사람에게도 얼마만큼 기회를 나누어 주는 미덕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스스로가 아주 바쁜 사람이라 여겨지면 ‘RS-A형’인지 ‘RS-B형’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뒤 A형이 못될 바에야 너무 바쁘게만 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생활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