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는 가히 꽃과 나무의 천국이다. 풍부한 햇볕과 충분한 비 그리고 적당히 온화한 기후가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져서 사계절 푸른 초장이고 전국이 커다란 국제식물원인 셈이다.
앵글로 색슨족들은 선천적으로 꽃과 나무를 좋아하고 ‘잉글리쉬 가든’이란 말이 보통명사화 한지 오래이다. 그러니 뉴질랜더들의 80%가 영국계이고 식물의 성장 조건이 최적인 이 나라가 꽃과 나무로 뒤덮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삶의 질을 찾아서’라는 이민 동기와도 어울리게 나는 한 때 옆집 영국할머니의 영향을 받으며 오클랜드 전역의 가든 센터와 꽃, 나무시장을 섭렵하고 다녔다. 타카니니의 ‘홀세일 트리마켓’을 비롯 단네모라의 ‘빅트리’, 큐미오, 알바니등 수십개의 가든센터, 마뉴레와의 장미농원까지 찾아다니면서 심고, 가꾸고 즐겼다. 뉴질랜드는 동백, 목련, 장미외에도 Dahlia, Lavender, Geranium, Hyacinth, Lily, Daffodil등 갖가지 화초들과 Cercis, Jacaranda, Liquidamber처럼 화려한 나무들 그리고 온갖 과일나무까지 어울어 진- 참으로 꽃과 나무의 천국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꽃 중에 ‘스칼렛 오하라’와 ‘포트-와인-마그놀리아’가 있다. 뉴질랜드에는Bougainvillea가 3-4종 있는데 꽃이 작고 번식이 쉬운 ‘Magnifica’, 브라질 원산으로 흰색이나 자주색 꽃이 피는 Glabra-‘Alba’, 황적 또는 홍적색의 마름모형 꽃이 피는 ‘Mrs. Butt’와 오늘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등이다. 일명 ‘Hawaiian Scarlett’으로도 불리는 원산지 불명의 ‘스칼렛’은 많은 가시와 함께 짙은 적색의 꽃이 피고 전성기는 10월부터 12월 사이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영화사상 가장 오래 상영되고 수차례 리바이벌 된 영화인데 그 여주인공으로 뭇 남성들을 꿈속에서까지 매혹 시켰던 ‘비비안 리’가 열연한 것이 바로 요염하면서도 야성적인 ‘스칼렛 오하라’역이다. ‘스칼렛 오하라’꽃의 인상이 바로 ‘비비안 리’의 스칼렛과 어쩌면 그렇게 딱 어울리는지 서양사람들도 보통 감각은 아닌 것 같은데 장미가 김태희처럼 그윽하고 여성적이라면 스칼렛 오하라는 야성적이고 섹시미 깃든 이효리인 것이다. 때때로 까페입구나 미술관의 담벼락을 뒤덮은 채 환상적인 데코레이션을 연출하면서 이국의 젊은 연인들의 분위기를 한껏 북돋아 주는 역할을 톡톡이 하기도 한다.
우리집 현관 양옆으로 영국 황실 근위병처럼 ‘포트-와인-마그놀리아’가 서 있었다.
Magnolia(목련)종류는 뉴질랜드에 엄청나게 많은데 언젠가 꽃시장에서 본 백목련이 너무나 소담스러워 한 그루 사다 심었다가 어느날 새벽에 나와보고는 기절할 뻔 했다. 1m도 채 안 된 새끼 나무에 직경 15cm나 되는 백목련 한송이가 횅하게 달려 있었던 것이다. 마치 5살짜리 꼬마가 철모를 쓰고 있는 격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왜 이렇게 손톱만한 꽃이 피는 ‘포트-와인-마그놀리아’에 Magnolia(목련)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일까? 가든 센터의 스태프들조차 아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포트~’는 자주색꽃이 보잘 것 없는데 비해 기막힌 향기가 있어 특별한 날에 꽃잎을 따 조그만 접시에 담아 이방 저방 놓아 두면 실로 온 집안이 멋진 향기로 가득차게 된다. 그래서 그 묘목을 구하려고 거의 1년을 돌아 다녀서야 겨우 타카니니의 꽃시장 한 쪽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아프리카에 가서 무궁화를 찾은 기분이 그랬을까? 여하튼 두 화분을 사왔는데 학명은 알 수 없지만 그놈의 이름이 ‘포트-와인-마그놀리아’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후로 한때 이 ‘포트~‘라는 놈을 오클랜드 전역에 퍼뜨리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꺾꽂이를 시도한적이 있었다. 이 달콤한 향기목으로 오클랜드를 ‘향기의 도시’로 명명하게 될 날을 기다리며-- 그리고 그 향기의 도시 오클랜드 뒤에는 ‘강~’라는 숨은 노력가가 있었다고 알려질 것도 기대하면서. 그런데 귀한 값을 하느라고 그런지 꺾꽂이를 계속 실패하다가 끈질기게 백번도 더 시도한 끝에야 드디어 십여주가 뿌리를 내리는 쾌거를 이루고 이놈들을 애지 중지 길러 친구들에게 분양해 주었다. 오클랜드를 다 뒤 덮으려면 100년은 족히 걸릴 것 같아 포기해 버린지 오래이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그윽한 향기를 뽐내고 있을 나의 분신들을 생각하면 잠시 행복에 잠기게 된다.
어느 남정네가 열 여자 싫다 하겠는가? 김태희도 좋고 이효리도 좋은 것처럼 스칼렛도 좋고 ‘포트~’도 좋다. 다만 성격과 모양이 다르니 한 놈은 담장 위로 보내고 한 놈은 현관입구나 정원 한켠에 무리지어 심어 놓으면 이 아니 좋겠는가.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골프를 즐긴 뒤 집에 돌아와 담장을 휘드러지게 덮은 섹시미의 스칼렛오하라 옆에 둘러 앉아 포트와인 마그놀리아의 그윽한 향에 취한 채 친구와 함께 인생을 논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뉴질랜드판 이태백의 성공한 이민 모습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