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빛 물먹은 목련이 피었네, 분홍색 화사한 벗꽃도 피었네. 소리없이 살금살금 봄이 찾아온 모양인가. 우리는 아직도 추위 속에서 떨고 있는데….
볕발 좋으면 까짓 추위쯤 아랑곳 않고 겨울 어느날에도 피는 게 여기 목련인 것같다. 볕에 나서면 겨울도 여름이요 그늘에 들어서면 여름도 겨울같은 뉴질랜드, 목련이 피었다고 봄을 착각하기엔 너무 어리석은지도 모른다. 허지만 벗꽃조차 흐드러지게 피어 웃고 있으니 정녕 봄은 봄인가 보다.
그러나 체감으로 느끼는 꽃샘바람의 한기보다 마음속에 스미는 짙은 한기 때문에 금년 봄은 맞이하기조차 민망하고 안쓰럽다. 자고나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기름값으로 해서 발걸음이 무디어지고 날이 갈수록 소비자 물가도 올라 삶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고 야단들이다. 이민 정책이 강화되어 들어오는 사람은 없고 활발하던 유학사업도 시시해져 교민경제가 말이 아니라고들 입을 모은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한국 식품점에 가보면 시효지난 물건들이 많은 것같다. 주인은 울상이지만 소비자도 물건 고르기가 쉽지 않고 신경을 써야만 한다.
우람한 나무에 탐스럽게 어우러진 목련을 보면서 움츠렸던 몸이 절로 펴지고 그 황홀함에 도취되어 긴 잠에서 깨어난 나른한 행복 속으로 젖어드는, 봄은 과연 계절의 여왕다웠다. 허지만 눈으로 즐기는 아름다움보다는 마음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이 봄에 실감하고 있다. 세상 사는 일이 신바람나지 않으니 잎도 트기전에 방정맞게 서둘러 피었다가 매가리없이 금방 떨어져 딩구는 볼품없는 처연한 모습이 먼저 보여서 허무와 절망감을 안겨준다.
세상 탓일까? 나이 탓일까? 인생이란 다 그렇고 그런 것. 먹은 나이 잡아 둘 수 없으니 재미없는 세상 탓이나 해볼까. 요즈음은 여기나 고국이나 아이들한테 안부 묻기가 겁나고 조심스럽다. 바빠야 할 사람들이 무지 심심해 하고 있으니…, 불황의 늪에 모두가 깊이 빠져 있다.
그러나 도리켜 보면 우리는 어려움을 수도 없이 겪으며 잘도 참고 견디어 온 대단한 민족이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이 그렇게 말이다.
지난 주에 지붕공사가 완료된 한인성당의 상량미사를 벅찬 감동과 감격으로 눈물겨웠다. 이민 역사 15년에 뉴질랜드 땅에 드디어 단단하고 반듯한 한국의 주춧돌 하나가 박히는 순간이었다. 어디 내 놓아도 손색없는 명물하나가 이 땅에 탄생되었다. 180여대의 차가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만 보더라도 그 규모를 알 수 있질 않은가. 금년 크리스마스 미사는 새 성전에서 볼 수 있게 된다니 지금부터 흥분으로 가슴이 뛴다. 이것은 우리 교우들만의 자랑이 아니라 모든 교민의 자랑거리임에 자부심을 갖는다.
지난 수 년간 새 성전의 염원으로 애쓰시는 신부님을 비롯해 교우 분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여의치 않은 장소에서 국밥과 국수를 말아 파는 주말 먹거리 장터에다 저금통에 동전모으기, 바자회 등, 눈물겨운 노력의 결실인걸 아니 그 감동이 진하기만 했다. 뿌리없이 옮겨진 나무가 척박한 이 땅에서 하나씩 이루어내는구나 기쁘고 힘이 솟았다. 작은 개미가 먹이를 물어 모으듯 벽돌 한 장 감으로 시작해서 푼돈을 모으고 모아서 이루어진 우리들의 성전, 한인공동체의 역사적인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뭉치면 산다는 좋은 교훈의 사례다. 이제 봇따리 싸들고 드나드는 남의 학교 말고 마음놓고 교육 할 수 있는 우리만의 학교, 한인학교도 세워야 하고 교민들의 숙원사업인 한인회관도 마련되어야 할 때 인것같다. 교우들만의 힘으로 성전이 되듯이 교민들의 단결된 힘으로 모든 걸 이루어 내리라 믿는다.
요즈음 새로운 정치 풍속도를 그리며 총선의 열풍이 불어오고 있다. 선거인 등록을 하고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교민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땅에 깊이 뿌리내리려면 당연히 주어진 권리도 행사해야만 할 것 같다. 우리의 결집된 의지를 보여 줄 때가 바로 이런 때이쟎은가. 비록 소수민족의 열악한 힘이지만 언제인가는 우리의 대변자도 탄생시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될 것 같다.
봄은 모든 생물들이 소생하는 태동의 계절이어서 새로운 희망으로 시작이 된다. 새로운 정치에 기대를 걸어 보면서 내년에는 우울함이 아닌 화사한 마음속에 복스러운 목련꽃을 피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