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내 편지함에 낯선 편지 한 통이 꽂혀 있었다. 복조리가 사진으로 찍혀 있는 근하신년 대한민국 우체국 카드였으니 분명 한국에서 보내 온 내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발신자 이0신(소화 테레사)라는 이름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고 들어왔다. 스펠링 하나 잘못된 게 없어 또박또박 쓴 내 주소며 이름이 확실하니 무엇을 더 망서리나 집안에 들어서자 마자 그것부터 개봉했다. 한국에 있을 때도 글 장난을 좋아해서 쓴 글을 보고 가끔씩 친구가 되어 달라고 오는 편지들이 있긴 했지만 혹시 여기까지? 짧은 순간에 많은 것을 떠올리는데 아! 이게 웬꽃!! 장미인가? 찔레꽃인가? 손가락 마디만한 여덟 송이 곱게 마른 두툼한 붉은 꽃이 푸른 잎사귀에 얹혀 얌전히 누여 있었다. 그 위에 얽은 망의 세로판지로 씌우고 그린색 헝겊 테잎으로 굳게 붙여 마무리를 한 멋진 꽃 카드. 지금 한국은 눈이 내리는 깊은 겨울, 꽃이 필 계절도 아닌데…, 내게 향하는 마음과 정성이 그림을 보듯 떠올라 전신에 찌르르 전율이 온다.
"존경하는 안젤라 형님, 이천오년 성체성사의 해에는 예수님의 성체 안에서의 신비를 느끼시며 늘 평화와 성령 충만하시어 기쁜 나날이 되시길 기도 드리겠습니다. "세실리아" 형님께서도 건강하시며 잘 지내고 계시오니 걱정 마시고 안젤라 형님 늘 건강하시고 성모님 사랑 안에서 행복하세요"
오! 그대였구나 내 언니 세실리아 형님이 나오니 그 때서야 감을 잡는다. 데레사 자매님! 한 때 수녀님이 되려 했다던 천사같이 마음씨 고운 중년의 여인. 한국에 갔을 때 안젤라 형님이 왔다고 생명 부지의 여인이 달려와 친 동기처럼 친근하게 대해주던 데레사 그였다. 문득 언니의 인품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두 사람의 끈끈한 정 때문에 멀리 사는 나까지 끼어 들게 된 것임을 깨달으며 그 반가움이 여간 고마운게 아니었다. 이 하찮은 동생을 얼마나 많이 자랑했으면 구면처럼 허물없이 형님 대우를 하며 그래도 반겨줄까. 가사에도 바쁜 틈을 내서 어려운 노인들 찾아다니며 봉사의 손길을 놓지 않고 사는 그를 밥이나 제때 챙겨먹고 다니라며 번번히 식탁으로 끌어 앉히는 언니를 보면서 내 언니도 그와 다르지 않게 봉사정신을 가지고 예쁘게 사시는구나 그렇게 느꼈다.
수더분하고 너그러운 언니는 나에게 어머니같은 푸근함을 주신다. 그 푸근함을 아마 데레사 자매님도 이웃에서 느꼈으리라 내 자리를 빼앗긴 것 같은 간지러운 질투같은 감정이 슬쩍 지나갔다. 부럽기도 해라. 말 많고 탈 많은 세상에 사람들끼리 좋아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이다.
요즈음 나도 심심하면 그 꽃들과 대화한다. 내 고국땅 어딘가에 뿌리를 박고 살던 꽃이기에 더욱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미움많은 세상에 보석같은 아우의 다정한 손길을 느껴 한없이 정이 간다. 그리고 절로 미소가 솟는다. 주변에 지천으로 깔린 꽃 속에 묻혀 살면서도 안달스럽게 그 꽃이 좋은 것은 꽃보다 더 예쁘고 값진 인정의 샘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참 아름답고 그래서 살만한 가치를 가지게 된다. 금년에는 꼭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황홀한 예감이 드니 참 행복하다. 작은 일에 흥분하고 감동하는 내 소녀적인 취향을 자극하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즐겁게 사는 내 자신이 마음에 들기도 한다.
슬픔을 생각하고 살기엔 너무 시간이 아까워 불행을 걸러 내고 맑은 마음으로 욕심없이 살고자 한다. 데레사가 보내온 꽃다발을 가슴에 품고 그 꽃보다 훨씬 아름다운 한 해를 살아 내리라 그녀를 닮아 살라고 노력하라는 메세지가 남겨 있음도 모르지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