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세번째 짐싸기와 휘어진 상다리

[5] 세번째 짐싸기와 휘어진 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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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스브로우에서 엘리어슬리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방은 하나였지만 독립적인 공간이라 사이먼과 아이비는 우리만의 공간을 가지게되어 너무나 기뻤다. 물론 가구라고는 달랑 침대 하나에 서랍장 하나였지만 (당연히 모두 중고였음) 우리는 그리 불편하지가 않았다.

이사하고 다음날 아침 사이먼은 아이비의 화장대와 식탁용 테이블을 손수 만들겠다고 일찍 부터 "Place Maker"로 향했다.나무와 못을 사서 집으로 돌아와 몇일을 뚝딱 뚝딱 하더니 앉은뱅이 화장대랑 식탁용으로 쓸 테이블을 만들었다.

완성을 하고 보니 화장대는 그런대로 쓸만했는데 식탁 테이블은 무거운 것을 올려 놓으니 "푹"하고 휘어져 버렸다.  하지만 부러지지는 않으니 계속 사용을 하기로 했다.  신문 깔고 먹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하루는 남편의 친구 부모님께서 뉴질랜드로 여행을 오셨다가 우리집에 들르셨다. 아이비에게 그동안 갈고 닦은 만두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온 것이다.  만두국과 만두 튀김으로 저녁 대접했다. 사이먼은 그날 저녁 쓰러지려는 식탁 테이블의 한쪽 다리를 잡고서 만두국을 먹었다.  아이비는 상 다리가 휘어진다는 말이 떠올라 혼자서 웃었다.

나중에 그 친구를 통해들으니 어머니께서 "쟤들 저게 사는거냐" 고 말씀을 하셨단다.  물론 한국의 사고 방식으론 이해를 못하시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당시 아이비와 사이먼은 만두국 한 그릇에도 마냥 행복해 하며 앞으로 둘 앞에 다가올 미래를 가슴 설래며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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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잭슨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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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잭슨 공연이 있기 한달전 부터 오클랜드에서는 키위 (뉴질랜드인을 총칭)들이 야단이었다. 가격도 비싼데 돈 없는 학생들은 식비를 줄여가며 티켓 구입할 돈을 모으고, 티켓을 판매하는 날은 온 시내가 들썩거렸다.  

사이먼과 아이비는 조용한 뉴질랜드의 일상에 모처럼 한국에서 느끼던 축제 분위기를 접할수있어 기뻤다. 비록 공연을 볼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드디어 공연의 날이 다가왔다.  공연장이 우리집에서 그리 멀지가 않아 음악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듯했다. 저녁을 먹고, 모인 친구들과 간접적이나마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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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를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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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약 7개월동안의 오클랜드에서의 뉴질랜드 생활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열심히 이 나라에 적응하려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우리가 이 사회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어떤 벽이 있음을 깨달았다.  

먼저 오클랜드라는 도시는 이민자들이 처음 뉴질랜드에 도착하여 쉽게 안주해 버리기 쉬운 곳이다.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살고있어 한국식품과 비디오등 한국 사람들이 살기에 필요한 물자를 구입하기가 쉽다(한국 레스토랑들과 가게들이 많음). 그러니 영어에 대한 필요성을 심각하게 느낄수가 없다는 것이 아주 심각한 문제점인 것 같았다.  물론 좋은 점들도 많지만, 아직 젊을 때라 이 사회에 직접 부딪쳐 보고 싶었다.

영어를 못하는 아시안들이 워낙 많아 영어를 정식으로 학교에서 배울수있는 기회가 적었다.  경쟁이 심각했다.

결심이 필요한 시기였다.  계속 이 곳에서 살아 간다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라 판단하고 남편과 나는 오클랜드를 벗어나기로 했다.  

뜻을(?) 같이한 남편의 친구랑 당시 유학을 왔던 친구의 동생과 우리 부부  이렇게 4명이서 우리에게 맞는 정착지를 찾아 북섬 여행 아니 탐방을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북섬의 모든 큰 도시와 그곳에 있는 대학들과 폴리텍들을 직접 방문해 봅니다. 정보들을 모으고 일정을 정하고 숙소를 정하는 등 그 모든 준비 과정들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들로 전혀 힘들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지금 8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여행이 지금 우리 부부를 있게 한 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북섬 일주에 대한 이야기와 문화차이로 생겼던 사고들을 다음편에 이어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