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 뜨겁게 포옹하라!

[356] 뜨겁게 포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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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질랜드에서 나의 행복은 두 단어로 시작되었다. "Hello!”혹은 “Hi!”
  을씨년스러운 겨울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식빵을 사기 위해 총총 걸어가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오던 사람이 내게 인사말을 툭 던졌다. 그 뿐이었다. 찰나에 그 사람은 멀어져 갔지만 나는 설레었다. 조그맣게 혼자 헬로와 하이를 중얼거리면서 배시시 웃음을 베어 물었다. 낯선 땅에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움츠러들었는데, 따뜻하고 상냥한 말 한 마디가 나를 탱탱하게 부풀려 주었다. 행복과 기쁨으로. 한 마디 말과 몸짓 하나가 전해주는 희망과 위안과 사랑은 생각보다 크고 깊다.

  전 세계에 Free Hugs 열풍을 몰고 온 호주의 후안 만씨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3년 전 그는 절망의 수렁에 빠져 있었다. 그 때, 한 아주머니가 후안 만씨를 꼭 안아 주었다. 그 따뜻한 포옹 이후 그는 삶의 희망을 찾았다. 그는 그 일을 계기로  Free Hugs라고 쓴 피킷을 들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바야흐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안아주기’ 열풍이 휩쓸고 있다.

   “---무슨 위로의 말을 해주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그저 힘껏 꼭 끌어 안아 주는 것만으로도 족해. 난 내가 힘들 때 누가 날 꼭 끌어 안아 주면 좋겠어.”  블레어 저스티스의 ‘바이올렛 할머니의 행복한 백 년’ 에 나오는 구절이다. 1898년에 태어나 3세기에 걸쳐 살아온 할머니가 말해준 위안 방법은 ‘그저 껴안는 것’ 이었다. 블레어는 바이올렛 할머니를 꼭 껴안아 주었는데, ‘왠지 눈물이 흘러나왔고, 내가 안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안긴 것처럼 평안하고 따뜻했다’ 라고 쓰고 있다.

  지난 2월(月), 이탈리아 북부 만토바에서는 5, 6천년쯤 된 껴안고 있는 유골이 발견되었다. 유골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시대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냐, 어머니와 병든 자식이 아니냐는 등 추측이 분분했다. 풍화되고 부식된, 수 천년이나 된 낡은 뼛조각에 전 세계는 왜 그리 흥분하고 감동했을까? 유골임에도 우리는 그들의 뜨거운 가슴과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껴안고 있었고, 껴안은 체 죽었고, 껴안은 체 죽어서 5, 6천년을 더 껴안고 있었다. 아마 그 유골은 껴안은 체 박물관에 전시될 것이고, 우리는 그 유골이 포옹을 풀지 않는 한 오래도록 감동하고 위안받고 기억할 것이다.

  우리 가정은 어떤가? 가족들과 얼마나 자주 살을 부비는가? 잘살아 보자고 이민 왔는 데, 정말 잘 살고 있는지? 부모들은 이 곳에 적응하느라 바쁘고, 아이들은 소외되어 있다. 어딘가에서 말썽을 부리거나 사고를 치면 그 때서야 비로소 부모들은 아이들의 존재와 문제점을 인식한다.

  부부 간에도 한국과는 다른 생활 방식에서 오는 트러블이 많다. 살림이나 하던 주부들이 남편과 함께 생활 전선에 뛰어 들다 보니 의견 충돌이 잦다. 혹은 별로 하는 일 없이 하루종일 마주보고 있으면서 서로를 지겨워하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가족 간에 물과 기름처럼 겉돌 때 융화시키는 좋은 방법은 신체 접촉이다. 신체 접촉은 대화나 다른 감정 표현보다 열 배 이상 효과적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할로우의 원숭이 실험은 따뜻한 접촉의 중요함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금속으로 만든 어미 원숭이에겐 우유병이 있다. 그러나 아기 원숭이들은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우유병 없는’ 어미 원숭이 품에서 떠나질 않는다.

  집을 나갈 때, 돌아올 때, 밥 먹을 때, 샤워하고 나왔을 때 껴안아 보는 건 어떤가. 찾아보면 삶의 구석구석 껴안을 일 들이 널려 있다. “학교에서 즐겁기를! 밥두 참 복스럽게 먹네! 물에 젖은 모습이 사뭇 섹쉬하군!”뭐 그러저러한 감탄사를 섞어서 포 옹하면 더 효과적이다. 처음엔 쑥스럽고 어색해서 연기처럼 내 품을 스르르 빠져 나가던 아들은 지금은 내게 잡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남편이 힘들어 보일 때, 등을 잡아당겨 품에 안고 3초만 있으면, 갑자기 생기가 돈다. 시든 화초에 감로수가 부어진 것처럼. 그리고 내 자신도 기분이 좋아진다.  ‘사랑받고 있구나, 사랑하고 있구나. 나와 너는 모두 다 가치 있는 존재다’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짧은 시간에 쌍방간에 이런 행복감을 느끼다니! 왜 진작에 좀더 많이 뽀뽀해주고 안아 주고 등을 토닥여 주지 못했는지 한스럽다.

  비바람 불고 습하고 쓸쓸한 뉴질랜드의 겨울이 시작되었다. 따뜻하고 뽀송 뽀송한 온돌 문화권에서 살던  한국 사람의 집은 겨울이면 난방 기구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전기요, 오일 히터, 팬히터, 벽난로에 옥매트, 온돌 판넬, 돌침대, 제습기까지. 그러면서도 뒷골부터 등 짝까지 심한 한기를 느끼는 것은 왜일까? 당신의 영혼이 습습하고 불안하고 외롭고 절망에 휩싸여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