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0일(화) 오클랜드 노스쇼어 소재 Westlake Boys High School에서는 와이테마타지역의료보건위원회 (Waitemata District Health Board: 이하 WDHB)와 한국인 보건/의료인 모임인 Korean Community Wellness Society (회장 홍진영: 이하 KCWS) 공동으로 ‘청소년 자녀를 둔 이민가정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 하였다. 오후 7시부터 개최된 이 행사에는 대략 100여명이 참석하여 건강한 가족관계 형성을 위하여 우리 부모들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이곳 뉴질랜드 보건당국의 지원정책은 무엇인가? 에 대해서 진솔한 대화와 유동한 정보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몇 해 동안 WDHB는 아시안 공동체, 더 나아가 한국교민가정의 정신건강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인식하고, 각 나라 이민공동체와 다양한 협력작업을 펼쳐왔다. 이의 일환으로 WDHB와 KCWS와 공동으로 한국교민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정신건강과 가족간 건강한 소통법을 주제로 이 세미나를 준비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뉴질랜드 정신보건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정신과의사 김아람박사와 임상심리학자 전현옥박사가 주 연설자로 나선 1부 순서에서는 한국 교민가정이 가지고 있는 갈등의 단면을 그래도 보여주는 사례가 소개되었다. 이날 준비된 ‘한 가족의 여정’이라는 콩트(라디오단막극)에서는 50대 초반의 아빠와 40대 후반의 어머니, 두 남매의 대화가 소개되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방황하고 있는 자녀들을 챙기지 못한다고 부인을 비난한다. ‘당신은 집에서 아이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언성을 높인다. 이에 질세라 아내는 ‘나도 당신과 함께 일을 함께 하는 데 왜 나에게만 책임을 미루냐, 아이들이 아빠를 피하는 것은 당신이 항상 모든 문제를 강압적으로만 누르려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라며 반격을 한다. 공부를 포기한 채 사춘기를 맹렬하게 보내고 있는 아들을 향해 아빠는 자조섞인 한탄을 한다. ‘내가 여기 뉴질랜드에서 와서 왜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애들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려고 모든 것 다 버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자식들은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고….’
교민사회에 뿌리깊은 있는 학력지상주의, 건강한 소통을 거부하고 있는 한국적 권위주의가 드러난 한 가족의 모습이다.
이민 1세대들이 이곳 뉴질랜드에 정착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 세월동안, 우리 자녀들 (1.5세)도 부모가 짊어맨 똑 같은 무게의 짐을 매고, 그들만의 아픔을 몰래 삼키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아니, 자신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결정에 의해 정해진 다른 삶에 더 큰 반항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 가정의 이야기가 소개되면서 행사장에서 감지되었던 무거운 공감.
우리 가정만 가지고 있는 문제라며 치부하며, 남들에게는 말할 수 없었던 나만의 이야기가 이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때 전현옥박사와 김아람박사는 우리 부모들에게 위로의 한마디를 건넨다.
가족들의 행복한 삶을 제공하기 위해 우리 부모들이 이곳에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 왔냐고. 앞으로만 달려가던 질주를 잠깐 멈추고, 우리 스스로를 격려해 보자고, 우리는 그만큼 칭찬을 받을만 하다고.
전통적 가치관의 수많은 많은 굴레를 안고 사는 부모세대와 두개의 상반된 문화권에서 정체성혼돈 시기를 겪고 있는 우리 청소년 자녀들. 두 세대를 이어 주는 단단한 고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물론, 이날 짧은 세미나시간 안에서 해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우리의 문제를 가감 없이 오픈 하고, 그 안에서 진지하게 대화를 시도하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 이날 세미나의 큰 의의가 아닐까?
1부 순서가 끝난 후 2부 패널토론회가 시작되기 전에 정신보건과 관련하여 해당 뉴질랜드서비스기관에 소개시간이 있었다. 특히, 사회복지사 이순혜님은 WDHB의 Asian Mental Health Support Service는 한국인 스태프를 통해서 받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언어적, 문화적 장벽이 없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이 서비스팀을 통해서 이미 많은 유용한 자료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음을 보고 놀랐다. 이외에도 아동, 청소년 정부보호기관인 Child, Youth and Family Service (CYFS) 그리고 아동, 청소년 정신보건 서비스 Marinoto 서비스등이 차례로 소개되었다.
2부에서는가족상담분야에서 근무하고 계신 한국인상담사 및 가정의 등 6명 (심리상담사 임동환, 심리치료사 정인화, 사회복지사 이순혜, 가정의 홍진영, 전현옥박사, 김아람박사) 이 참석하여 패널토론회를 가졌다. 이날 토론회는 아시안건강네트워크에서 코디네이터로서 근무하며 아시아 공동체와 뉴질랜드 정부 정책부서와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조성현님이 진행을 맡았다. 패널토론회는 시간상의 이유로 사전에 배부된 질문지를 통해 취합된 질문들은 비스한 유형으로 나누어 패널에게 배분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자녀들의 과도한 인터넷 사용, 이곳 뉴질랜드 정신보건 서비스 이용에 대한 애로점, 자녀들과의 효율적인 대화의 기법 등 다양한 질문들이 쇄도하였고, 패널들도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다만, 시간의 제약속에서 다음 세미나를 기약하며 마무리를 해야 했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었다. 조성현씨는 우리 교민들의 제안 하나하나가 뉴질랜드 정부의 보건정책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이날 전체 행사를 마무리하였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교민 한분은 이날 행사를 통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며 ‘한국적인 정서만을 고집하며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아이들을 통해, 뉴질랜드의 문화를 더욱 알고, 이해할 것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을 꿈꾸지 않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이날 얻은 두가지 충고,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이 충고를 실천해 보자 ‘잠시 내려놓고 쉬자’, 그리고 ‘나를, 그리고 앞에 있는 가족들을 사랑하고, 격려하자’.
자, 그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세미나에서 조금 더 업그레이된 참석자와 진행자의 진지한 대화를 기대해 보자.
김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