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투자자 유혹하는 국영기업 매각

개미투자자 유혹하는 국영기업 매각

0 개 1,542 JJW


1980년대 후반 한국에서는 정부의 관리하에 운영되던 대규모의 공기업을 증권시장에 상장하는 민영화 계획에 따라 국민 각계 각층에게 해당 주식을 골고루 분산하여 대다수의 국민을 주주로 하는 ‘국민주’가 보급된 적이 있다. 포항제철과 한국전력 등 두 차례의 국민주 신청에 증권시장 활황세와 맞물려 서민들의 쌈짓돈이 몰렸다. 지금 뉴질랜드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 상반기 마이티 리버 파워(Mighty River Power)에 이어 대표적인 국영 에너지 회사인 메리디안 에너지(Meridian Energy)의 주식이 일반인의 공모신청을 받고 있다.
 
5월 상장된 마이티 리버 주식 발행가 이하로 떨어져 
국민당 정부는 윈스턴 피터스(Winston Peters) 뉴질랜드퍼스트(NZ First)당 대표의 표현처럼 ‘필사적’으로 국영기업 매각에 매달리고 있다. 
 
이는 국민에게 주식을 분산·소유시킴으로써 기업에의 참여의식을 높임과 동시에 기업이 획득한 이익을 분배하여 중하위계층의 소득을 향상시켜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본래의 명분보다는 주로 국가 재정의 확충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마이티 리버 파워 부분 매각이 위법이라는 마오리 카운슬의 주장이 지난 2월 대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상장절차에 들어간 마이티 리버 파워 주식공모에 44만명이 등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주당 발행가가 2.50달러로 결정되면서 마지막에 주식을 매수한 사람은 11만3,000명에 그쳤고 주가도 5월 10일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이후 초기에 약간 올랐으나 이후 내리막길에 들어서며 2.17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반등해 9월말 현재 2.27달러로 발행가에도 못미치는 상황이다.

마이티 리버 파워의 주식을 매입한 많은 사람들은 처음으로 주식을 매수한 이른바 ‘엄마와 아빠(mums and dads)’ 투자자들로 정부의 홍보를 믿고 안정된 고수익을 기대하고 투자했으나 현재까지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2014/15 회계연도 재정흑자를 목표로 하고 있는 정부는 마이티 리버 파워 전체주식의 49%, 6억8,600만주를 매각함으로써 17억달러의 수입을 남겼다.
 
정부는 당초 국영기업들의 부분 민영화를 통해 50억~70억달러의 수입을 올릴 것으로 기대했으나 존 키(John Key) 총리는 최근 50억달러에 가까울 것이라고 밝혔다.
 
메리디안 에너지 18일까지 주식공모
현재 주식공모중인 메리디안 에너지는 수력과 풍력을 이용하여 전력을 생산하는 뉴질랜드 최대 재생가능 에너지회사로 파워숍(Powershop)이라는 브랜드로 전력소매 부문의 사업도 운영하고 있다.
 
오는 18일까지 신청을 받고 있는 메리디안 에너지 주식공모는 23~31일 발행가와 주식배정물량 등이 결정되고 29일 뉴질랜드 및 호주 증권거래소에 상장될 예정이다.

당초 11월 초순에 상장할 계획이었던 정부는 요즘 주식시장이 활황세를 보이고 있어 10월29일로 일정을 앞당겼다.

메리디안 에너지 전체주식의 최대 49%까지 매각되고, 그 가운데 최소 85%는 뉴질랜드 국내 투자자들에게 배분될 예정이다.

발행가 상한선, 분할 납부 등 이례적 조건
메리디안 에너지 주식공모가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 들어 국영 에너지 회사들이 이미 상장되어 정부 재정을 충당했고 주식시장에 한꺼번에 너무 많은 물량이 공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주식시장이 이 모든 물량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한 정부가 너무 국영기업을 매각해야 한다는 집착에 빠진 나머지 메리디안 에너지 주식을 헐값에 매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처음에 1달러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2015년 5월까지 분할 납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현재 자금이 충분하지 않아도 메리디안 에너지 주식을 매수할 수 있고 분할 납부기간 3회의 배당금을 받으며 주주총회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럴 경우 예상 수익률은 2014 회계연도에 8.4%, 2015 회계연도에 9.2% 등 보유 12개월 동안 13.4%로 분석되고 있다.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18개월간 보유한다는 조건으로 발행가격의 상한선을 1.60달러로 못박았다. 즉 발행가가 1.80달러로 결정되더라도 이들 장기 보유 투자자들에게는 1.60달러에 공급하겠다는 얘기다. 이처럼 공모가에 상한선을 두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상반기에 상장됐던 마이티 리버 파워의 저조한 주가에 불만인 일반 투자자들을 의식해 형평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후한 조건을 제시했다.

발행가격이 1.50~1.80달러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러한 혜택들은 높은 수익을 쫓는 투자자들에게 매력을 주고 있다.
 
국제 알루미늄 가격 하락으로 매출감소
이처럼 후한 조건을 제시하는 이유는 국제 알루미늄 가격의 하락과 밀접하다.
 
메리디안 에너지의 최대 고객이자 매출의 40%를 차지하고, 뉴질랜드 전력 생산의 14%를 소비하는 티와이 포인트 알루미늄 스멜터(Tiwai Point aluminium smelter)가 알루미늄 가격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뉴질랜드 최대 알루미늄 생산단지인 티와이 포인트 알루미늄 스멜터에 3,000만달러의 지원을 결정했고 메리디안 에너지는 전력요금을 할인해 주고 있다.

이로 인해 메리디안 에너지의 장부가치가 지난 8월 5억달러 감소한 46억8,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따라서 정부는 현 시점에서 무리하게 메리디안 에너지를 상장시키는 것보다 알루미늄 가격이 회복될 때까지 연기하는 것이 옳은 수순이었다는 평가이다.

국영기업 상장을 위한 정부와 에너지 회사들의 광고비용도 6월말 현재 5,890만달러를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이다.
 
그 가운데 4,110만달러는 정부가 부담했고 나머지 금액은 4개 에너지 회사들이 지출했다.

투자자문회사 퍼스트 뉴질랜드 캐피탈(First NZ Capital)의 롭 보드(Rob Bode) 조사팀장은 “투자자들은 저조한 수익률을 보이고 있는 마이티 리버 파워의 주식 상장을 거울삼아 투자를 미루거나, 아니면 반대로 마이티 리버 파워보다 낮은 가격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면서 “가격이 어떻게 형성될 지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데본 펀드 매니지먼트(Devon Funds Management)의 필립 앤더슨(Phillip Anderson) 경제분석가는 마이티 리버 파워가 저조한 실적을 보인 점을 고려할 때 메리디안 에너지 매각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배당금에 대한 외국인의 수요도 낮은 편이고 금리가 인상되기 시작하면 주식 수익률은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질랜드주주협회의 그랜트 디글(Grant Diggle) 회장대행은 메리디안 에너지 주식은 60%만 먼저 지급하고 나머지를 지급하기 전에 3회의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이티 리버 파워보다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주식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전체 금액의 60%를 지급한 상태에서 배당금 등 실질 수익률은 약 12%로 은행금리보다 높겠지만 나머지 40%를 완납한 후의 수익률은 그처럼 높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밀포드 에셋 매니지먼트(Milford Asset Management)의 브라이언 개이노(Brian Gaynor) 펀드매니저는 “포트 오브 타우랑가(Port of Tauranga), 포츠 오브 오클랜드(Ports of Auckland), 에어 뉴질랜드(Air New Zealand) 등 민영화된 회사들이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다”면서 “공기업 주식 매수는 금방 부자되는 수단이 아니고 우량 기업에 장기간 낮은 위험으로 안정된 수익률을 올리는 투자이다”고 설명했다. 
 
국민당 정부는 앞으로 유일하게 남은 국영 에너지 회사인 제네시스 에너지(Genesis Energy) 마저 내년 상반기 안에 부분 매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8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에어 뉴질랜드 주식도 매각해 51%까지 낮출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