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와 호주의 정상들이 회담을 열면 흔히 양국간의 특별한 관계를 언급하며 ‘가족’ 또는 ‘형제’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같은 영국 조상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왕래가 잦고 비슷하게 각 나라 인구의 2% 정도를 상대 국민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태즈먼 해를 사이에 두고 있는 양국이 형제 관계라면 요즘 뉴질랜드가 구박받는 아우에 다름 아닌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호주 국산품 구매 캠페인으로 수출 타격
최근 양국 관계에 긴장을 고조시킨 발단은 호주에서 전개되고 있는 국산품애용운동인 ‘바이 오스트레일리아(Buy Australia)’이다.
울워스(Woolworths)와 콜스(Coles) 등 호주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들이 주도하고 있는 이 캠페인으로 말미암아 많은 뉴질랜드 제품들이 이들 슈퍼마켓 체인에서 더 이상 팔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호주 내에서 대체할 제품을 찾지 못하는 데도 단지 뉴질랜드산이라는 이유로 거부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는 지난달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양국 고위급 회담에서 거론됐다.
존 키(John Key) 총리는 “뉴질랜드 제품에 대한 금지가 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CER) 조항을 위반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단일경제시장의 정신에 반대되는 것이다”며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호주 토니 애벗(Tony Abbott) 총리는 “‘바이 오스트레일리아’ 운동으로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회사는 호주 상업위원회에 제소할 수 있다”며 직접적인 개입을 거부했다.
호주 콜스 슈퍼마켓은 지난 2012년에도 뉴질랜드산 메인랜드(Mainland) 치즈의 판매를 중지해 소비자들의 원성을 샀었다.
콜스와 울워스는 호주 소매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으며 이 캠페인이 지속된다면 뉴질랜드 수출에 수 억 달러의 손실을 끼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고, 뉴질랜드의 수출업체들은 뉴질랜드산 제품 금지가 확산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다.
뉴질랜드산 판매 거부는 자유무역협정 위반
노동당 데이비드 컨리프(David Cunliffe) 대표는 “키 총리가 강경하게 협상하지 않았다” 면서 “‘바이 오스트레일리아’ 캠페인은 양국 간에 상대국의 제품을 자기 나라의 제품과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는 CER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983년 체결된 CER은 뉴질랜드와 호주간 경제교류의 토대가 된 협정이다.
호주에서의 이 같은 상황은 뉴질랜드에서 반감을 일으켜 일부는 뉴질랜드도 똑같이 호주산 제품을 규제해 맞서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이콧 카운트다운’ 캠페인이 지난달 페이스북에서 시작되어 큰 호응을 얻었고 노동당의 식품안전담당 데미언 오코너(Damien O’connor) 대변인은 원산지표시제를 도입해 뉴질랜드인들이 호주산을 구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호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뉴질랜드 제품에 대한 거부 감정을 호주인들도 느끼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산장려활동을 하고 있는 뉴질랜드 메이드(New Zealand Made)는 호주의 ‘바이 오스트레일리아’ 캠페인에 대해 공격적이거나 원색적인 반응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카운트다운 불공정 행위로 조사받게 돼
이러한 가운데 지난달 12일 노동당 쉐인 존스(Shane Jones) 의원이 국회특별조사권을 발동하여 카운트다운의 횡포에 대해 조사할 것을 주장하고 나서 커다란 파장을 불러 왔다.
존스 의원은 카운트다운이 자사의 영업손실을 충당하기 위해 공급업체들에게 분담금을 요구하고, 만약 이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협박을 해 왔다고 주장했다.
울워스의 뉴질랜드 법인인 프로그레시브 엔터프라이즈(Progressive Enterprises)는 뉴질랜드에 168개의 카운트다운 매장을 보유하고 1만8,500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슈퍼 밸류(Super Value)와 프레쉬 초이스(Fresh Choice)의 프랜차이즈주다.
존스 의원은 이 문제를 뉴질랜드 상업위원회에 고발, 상업위원회가 공식 조사에 들어갔다.
키 총리도 “뉴질랜드 소비자와 카운트다운 관계자들을 위해서도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카운트다운측은 한 주류회사로부터 100만~200만달러를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존스 의원이 주장하는 것처럼 갈취나 협박성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프로그레시브 엔터프라이즈의 데이브 챔버스(Dave Chambers) 대표는 “뉴질랜드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든 호주 울워스 본사의 ‘바이 오스트레일리아’캠페인은 계속될 것”이라며 “우리는 카운트다운 고객들에게 값싼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공급업체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워스의 랄프 워터스(Ralph Waters) 회장은 자사가 비방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면서 “뉴질랜드가 호주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고 맞받았다.
뉴질랜드인 규제하는 법률 개정으로 관계 악화
뉴질랜드와 호주의 불공평하고 껄끄러운 관계는 지난 2001년 2월 호주가 사회보장 관련 법률을 개정하면서 시작됐다.
이 법률 개정으로 인해 호주에 입국하는 모든 뉴질랜드 시민권자는 영주권자가 아닌‘비보호’특별범주비자상의 임시 거주자로 분류되어 실업수당 등 각종 사회복지 대상에서 배제됐다.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호주인들이 실업수당과 장애수당, 주거보조비 등 각종 사회복지 지원을 받는 현실을 고려하면 공평한 상호 이민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호주에 사는 뉴질랜드인들의 권익보호단체인 오즈키위(OzKiwi)는 최근 관계당국에 이러한‘공식적’차별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법률 개정의 숨겨진 동기는 퍼시픽 아일랜드인들에 대한 입국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며 당시 시민권·다문화 장관의 TV 인터뷰를 증거로 제시했다.
지난해 9월 새로 정권을 잡은 애벗 총리가 취임할 때만 해도 그의 부인이 뉴질랜드인이라는 점을 감안해 키위에 대한 차별대우가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으나 상황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콧대 센 애벗 총리는 “뉴질랜드인들은 호주에서 자유로이 거주하고 직업을 구할 수 있는 우대를 받고 있다”며 현행대로 유지할 뜻을 내비쳤다.
키 총리는 지난달 양국 고위급 회담을 가진 후 “애벗 총리는 자국내 뉴질랜드인들의 요구보다 경제와 지지도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며 “호주 정부가 2001년의 법률 개정을 뒤집는 일은 가까운 장래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호주는 최근 실업률이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경제지표상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는 호주 제조업의 공동화(空洞化)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 위기 이후 호주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생산비 상승으로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됐다. 호주에서 자동차를 생산해온 도요타,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은 수년내 호주 생산라인을 접겠다고 잇따라 밝혔다.
재정난에 처한 호주 정부는 1,300억호주달러 규모의 대대적인 자산 매각 계획을 밝혔다.
또한 시장에서는 올해 호주 성장률 예상치(2.9%)가 뉴질랜드(3.4%)를 밑도는 등 경제상황 반전으로 뉴질랜드달러와 호주달러 가치가 40년 만에 역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호주는 뉴질랜드와 가장 가까이 있는 우방이지만 기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관계로 남고 있다.
[이 게시물은 KoreaPost님에 의해 2014-03-12 09:17:55 포커스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