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가 사람마다 다르듯 적성(適性:Aptitude) 또한 천차만별이다. 그렇게 사뭇 다른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사회를 만든다.
나는 살아 오면서 비교적 재운(財運)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아내의 권유대로 '올림픽(선수촌)아파트'에 분양 신청서를 냈었다. 당시 근처의 '훼밀리아파트'는 인기 절정이었고 경쟁률이 7:1이 넘었다. 하지만 내부치장 등이 화려하지 못했던 '올림픽아파트'는 지원자가 미달 상태여서 당연히 당첨되었기에 '내 집 마련을 했다'는 안도감 외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나고 입주를 하면서부터 상황은 변했다. '훼밀리아파트'의 인기는 오히려 떨어지고 '올림픽아파트'는 주거 환경 등으로 선호도가 수직 상승했다. 종합상가, 수영장 등 근린생활시설이 잘 마련 되었고 길 마즌 편 올림픽공원에서는 특별한 날 수변무대에서 쏘는 축포가 밤 하늘을 꽃밭으로 수 놓았다. 또한 인접한 체육대학에서 해마다 열리는 연예인체육대회는 그야말로 구경거리였다. 주위에 세륜초등, 오륜중, 창덕여고, 보성고교 등 선망하는 학교들이 들어 섰고 단지 한 가운데를 흐르는 실개천에는 붕어와 미꾸라지가 노닐었다.
지금은 초고층호화아파트들과 자연 환경이 무척 좋은 분당, 용인, 수지 등 외곽지역의 아파트들이 인기가 높아졌지만 당시 올림픽아파트는 선호도가 매우 높았고 지하철 5호선이 코앞으로 들어서면서 집값 또한 치솟았다. 이민와서 10년 쯤 되었을 때 "몸이 있는 곳에 무게 중심이 있어야 한다"고 빡빡 우겨 그것도 꽤 좋은 값으로 팔았는데 그 후 3년만에 3억 정도가 더 오르게 되자 집에서 쫓겨 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런데 올림픽아파트가 한국에서 경제, 학력, 문화 면에서 최상류층에 달하는 수준이었지만 그에 비례해서 행복지수까지 높지는 않았고 오히려 더 문제가 많아 보였다. 이혼율이 무척 높았고, 주민끼리의 이권 문제, NIMBY(집단이기주의)현상 등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거나 소음이 일었다. 걸핏하면 주부들이 몰려와 "왜 저쪽 단지에만 좋은 나무를 심었느냐?" "학교로 직접 통과할 수 있는 쪽문을 내 달라!" "관리인을 줄여 관리비를 줄여라"(작은 평수), "보안을 위해 더 늘려라(큰 평수)"등 민원이 속출했다. 지금 멀리 떨어진 뉴질랜드에서 '올림픽아파트' 시절이 문득 문득 떠오르는 것은 뉴질랜드 교민 사회의 분위기가 당시 올림픽아파트와 매우 흡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학력이나 문화수준이 높으면 무엇 하랴? 더불어 살지 못하면 아프리카의 빈국들이나 방글라데시보다 행복지수가 떨어질 수 있는데.
<두 달 전 일이다. 집에 들쥐 한 마리가 들어 와 자꾸 신경 쓰이게 하길래 방법을 생각다 못해 싫어했지만 할 수 없이 고양이를 기르기로 했다. 인터넷 'Trade me'로 들어가 보니 마침 Hellensville의 VET에 무료로 분양하는 고양이가 세 마리 있어서 찾아 갔다. 그런데 스타프가 안고 있는 고양이를 보니 한쪽 눈이 먼 애꾸였다. 질겁을 하고 "이 고양이는 싫다"고 했더니 그녀 왈 "이 고양이는 안 된다. 불쌍하다고 제일 먼저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이미 있다."는 것이었다. 순간 가벼운 충격과 함께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양이를 공짜로 데려가는데도 한 통의 먹이와 Litter와 벼룩 약까지 딸려 보내는 친절을 잊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우리 동네 초입에 사는 '로나' 또한 매력 넘치는 아줌마다. 하루에 몇 번을 보아도 손을 하늘 높이 흔들면서 반갑게 인사한다. 행여 뭔가를 물을라 치면 맨발로 달려 나와 신나게 알려 준다. 제초제는 뭘 써야하며, 잔기깎기는 어디서 수리를 잘하는지, 고양이 장난감 싸게 사는 법, 심지어 비오는 밤에도 올블랙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본데일 경기장까지 같이 가서 응원하자'고 선동(?)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런 나라에 이민을 온 것이다. 물론 아시안이라면 눈부터 깔아 내리는 싸가지들도 더러 있고 문화나 관습의 차이가 우리를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하나 하나 적응하고 극복해 가야 한다.
역사는 때때로 조용한 승리가 더 값진 것임을 말해 준다.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가 지중해의 패자가 되어 헬레니즘(Helenism)세계로 진출한다. 로마는 정복자의 강한 자신감으로 문화까지 지배하려 했지만 피정복자인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에 압도당하고 만다.
그래서 "피정복자인 그리스가 정복자인 로마를 문화적으로 정복했다"는 역설적 진리(Paradoxical Truth)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아우그스투스에 의해 평화가 시작되고 나서는 로마 고유의 문화가 펼져지게 되고 드디어 찬란한 '로마법'을 성문화하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적성이 다양한 사람들이 뉴질랜드에 왔다. 너무나 다른 문화와 생활 속에 이질감과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지만 그들과 하모니를 이루어야 내가 행복해 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