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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1/2009. 16:28 코리아타임스 (124.♡.150.213)
딸 다섯에 막내로 아들 하나, 그 아들을 얻으려고 줄줄이 딸을 낳았을까?
여덟식구 대 가족이 한줄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앉을 자리가 없는 듯 그들로 꽉 찬 느낌을 받으며 혼자서 싱거운 생각을 하게 된다. 촌스럽게도....
자녀를 열 셋이나 둔 어느 사십대의 키위 부부를 본적도 있긴 하지만 여섯이라는 숫자가 나와 관련이 있어 두드러지게 눈에 띠는 것이리라. 어느 섬나라에서 온 사람들일까?
검은 피부 색깔처럼 입는 옷들도 늘 칙칙하고 어두워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임에도 빛나는 검은 진주로 돋보이는 것은 그들 가족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감동스러워서이다. 그들 가족이 곳곳에서 봉사를 하는 성당 안이 마치 그들로 가득 찬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입구에서부터 안내를 맡아 바쁘게 들락거리는 아버지며 성가를 부를 때 신나게 드럼을 두드리는 딸애는 아마 맏이인지? 피아노를 치는 애는 두번째인지? 그 아래인지? 그런가 하면 흰 제복을 입고 신부님을 돕는 복사애도 있다. 너무나 생김새가 닮아 있어 순서 가늠하기조차 어렵게 년년생처럼 등치도 비슷하다.
어느날인가 망사위에 주름이 그득히 잡힌 하얀 치마 위에 흰 셧츠, 새까만 부츠로 멋을 낸 몇 째인가가 독서대에서 봉독을 하는데 얼굴답지 않은 너무도 예쁜 목소리로 읽는데 또 한번 놀랐다. 그들은 틀림없이 음악 가족일 것이라고 넘겨짚어도 될 것 같다. 그 목소리에 악기 반주가 겹치면 멋 있는 음악회가 될 것이 뻔하기에 말이다. 자녀들의 재능을 발굴해서 키워 낸 그들 부모가 존경스러워 보였다.
뚱보인 엄마는 볼에 살이 실려서 심술스러워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풍기는 만만치 않은 위엄에 공연히 주눅이 든다. 반대로 머리통이 뾰족해서 대추씨처럼 보이는 남편과 어찌 그리도 이목구비가 남매처럼 닮았는지 희안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아이들도 한결같이 똑 같아서 어디 내 놓아도 그들은 한 형제임을 금방 알아볼 수가 있다. 성실한 믿음의 가족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게 여과없이 잘 드러난다. 한꺼번에 움직이는 여덟 식구의 외출준비로 성당에 나올 때까지 부산스러웠을 상상을 하면서 아르스름한 향수같은게 느껴져 나도 잠시 행복해진다.
그 부부가 나란히 단 위에서 성체분배 봉사를 할 때면 짐짓 내가 검은 나라에서 "미사"를 보는 듯한 착각마져 일으킨다.
드물게 봉사가 없는 날 나란히 않은 그들 등뒤에서 나는 앉은 순서대로 내 어렸을 때 육남매 우리집 형제 자매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맨 끝에 앉은 맏이는 내 언니, 그 다음은 오빠, 그리고 나, 두 동생들 다음으로 엄마와 아빠 사이엔 내 막내 동생이듯 막내아들이 끼어 앉아 있다. 그러나 올 때의 순서 저버리고 먼저 저 세상 가버린 막내 동생 생각에 울컥 가슴이 미어오기도 한다.
늘상 떠들석하고 웅성거림 속에서도 적당히 질서가 잡혀 있어 사람 사는 것 같은 화목함이 넘쳐 나는 게 우리 집이었다. 이웃이 부러워하고 이모님조차 부러운 시선으로 흘금거리지 않았던가, 둥글둥글한 엄마 늘 호박같은 우리 마누라 덕에 산다고 추켜세워 주시며 사업 잘하고 가정에 충실하던 애처가 내 아버지, 우리들은 빨리 키가 커지고 싶어서 다투어 벽에다 금그으며 키 자랑을 했다. 키가 잘 크는 애를 아버지가 상을 주었기 때문에 그게 불만이었던 시절 얘기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바쁜게 이유겠지만 가족이 있어도 가정은 없는 듯이 살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가족간의 정서가 무엇인지? 현대 사회가 만들어 낸 병폐가 아닐런지-
사이버 공간에서 먼 세상 사람들과 교감하며 피부적인 가족 사랑을 잃어 가는 아이들, 독립된 방에서 각자가 너무 이기적이고 혼자만의 사고 방식으로 흐르는 삭막한 분위기. 비좁은 방에서 여럿이 서로 부대끼며 살던 그 때가 인간적으로 더 정스럽고 추억할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따뜻한 아름목자리 요 밑에 함께 발 묻고 서로 발바닥을 간지럽히며 깔깔대고 딩굴던 그때, 그런 옛날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