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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1/2009. 14:17 코리아타임스 (124.♡.150.213)
어떤 이에게 벽(wall)은 세상과 나를 차단시켜주는 극복하기 어려운 것(a barrier between two areas)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엇인가를 감싸주기 위한 칸막이(a dividing surface intended for enclosing something)를 의미하기도 한다. 벽은 방의 일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울러 어떤 이에게 방은 재산 증식의 가장 좋은 투자 수단이 되는 집의 한 모퉁 이에 불과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인간 존재의 최소한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두 연인이 있었다. 피에트레크와 아그네시카는 공원이나 극장 같은 타인의 눈길에 노출되는 장소에서만 만나다, 아무도 없는 둘만의 공간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한다. "아그네시카, 벽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두 몸을 가려 줄 장소가 왜 이리도 없을까? 단 둘이 일주일 만이라도, 하루만이라도, 단 하루 밤 만이라도 함께 지낼 수 만 있다면." 그는 수줍어하는 아그네시카를 어렵사리 설득하여 하루 밤을 같이 보낼 생각으로 로만이라는 사내의 방을 토요일 저녁 동안만 빌리기로 한다.
토요일 저녁 6시가 되기를 며칠 동안 기다린 후, 가족들의 눈과 비밀 경찰들의 눈들을 따돌리며 두 연인은 로만의 방으로 향하지만 로만은 약속을 어기고 짙은 화장을 한 여자와 자기의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다. 피에트레크는 절규한다. "우리를 벽으로 둘러싸 줄 조그만 방도 못 구하는구나. 만약 로미오와 줄리엣이 1956년 이 바르샤바에 살았었다면 그들도 우리와 같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장소를 갖지 못했을 거야." 로만의 방을 등지고 계단을 내려오며 아그네시카는 생각한다. – 벽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면의 벽, 아니 삼면이라도 좋겠지? 삼면이라도 방이 될 수 있을까? 그런 방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그런 방이 어디 없을까?
삼면의 방도 찾을 길 없었던 두 연인은 휴일 날 남들의 눈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로 나가기로 한다. 일 주일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그 날은 비가 내렸다. 2 차 세계 대전 후 공산화 된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는 더 이상 태양은 떠오르지 않고 모든 인간들의 정신적 자유와 사랑까지도 억압하는 끝없는 이데올로기의 비만 내렸다. 태양마저도 그들을 배신하자 아그네시카는 돌아오는 밤 거리에서 오래전부터 계속해서 자신을 유혹해 오던 길거리 불량배 중 한 명에게, 권력을 등에 업고 방을 소유하고 있던 한 탐욕자에게 절망적으로 몸을 내버린다.
"내 이름이요? 아무렇게나 불러줘요! '내 사랑'이 좋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작은 태양'이라는 이름이 더 좋 아요. 우리는 비오는 날 밤에 만났으니까요." 태양마저 숨죽인 이데올로기의 숲 속에서 아그네시카는 차라리 자신의 몸을 불살라 맑은 날 빛나는 태양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폴란드 출신 작가 마레크 플라스코(Marek Flasko)의 소설 '제 8요일(The Eight Day of the Week)'의 내용이다. 24시간 밖엔 존재하지 않는 절망적인 현실에서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 없어 꿈꿀 수 밖에 없는 비현실적 희망, 즉 절망의 역설적 시간인 게오르규의 '25시'처럼, 플라스코의 소설 '제 8요일'의 제목은 7일 밖에 없는 일주일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피에트레크와 아그네시카가 소망했던 요일, 즉 절망의 역설적 요일을 상징하고 있다. 플라스코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깐느 영화제에 출품되어 서방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이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결국 조국 폴란드에서 쫓겨나 서독으로 망명한다.
어떤 이에게 한강 주변 도심 재개발은 유람선이 떠다니는 강변의 멋진 스카이 라인과 재산의 폭발적 증가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본디 태어난 곳이 척박하여 가느다란 뿌리 몇 가닥만 남의 땅에 걸쳐 놓고 하루하루 버티는 풀꽃 같은 이들에게는, 앞으로는 아스팔트와 콘크리이트 바닥에 뿌리를 내리며 살라는 'mission impossible(불가능한 임무)'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1977년 월남전 체험을 바탕으로 쓴 장편소설 '머나먼 쏭바강'과 '인간의 새벽', '왕룽일가', '우묵배미의 사랑' 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베스트 셀러 작가 박영한도 천형으로 안고 태어난 가난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며 변두리 지역을 전전하며 자신이 글을 쓸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 작가라는 존재의 최소한의 존재 조건인 '지상의 방 한 칸'을 차지하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담은 동명의 소설을 지상에 남기곤 2006년 8월 머나먼 쏭바 강 너머 천상의 방으로 영원히 돌아갔다.
서울 밤하늘의 아파트 불빛은 별빛보다 더 많은 듯 보이지만, 그 가운데 내가 쉴 수 있는 불 빛 하나를 평생 그리며 사는 이들도 한강에 떨어져 내리는 별빛 보다 더 많은 것 같다. 서러운 흰 눈발로 한강에 쏟아져 내릴 서울의 별빛이 한 겨울의 칼바람보다 더 시릴 것 같은 2009년 설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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