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베이→오클랜드(Ⅰ)

웨일베이→오클랜드(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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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대장에게는 독특하고 훌륭한 성품이 하나 있다. 힘들어하는 대원을 보면 협박과 구박을 번갈아 하다가도 막상 도저히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상황이 오면 모성 본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모성 본능은 때때로 융숭한 밥상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장모님' '이모' '친정집'이 연상될 정도로 정성이 듬뿍 담긴 밥상이다. 에베레스트에 함께 갔을 때 5000미터가 넘는 산 중에서 고소증에 시달려 맥없이 앉아 있던 나에게 박영석 대장이 정성스레 말아줬던 김치국수를 생각하면, 지금도 혀 밑에 침이 자르르 고이며 고마운 생각이 든다.(높은 산에서는 낮은 기압으로 인해 맛있게 국수 삶기가 매우 힘들다. 여기에는 박대장만의 노하우가 있는데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특히 함께 간 대원들이 힘들어하면 영락없이 솜씨를 발휘하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다. 어제의 빡빡한 일정과 장거리 이동에 지친 우리 모습에 모성 본능이 자극되었는지, 박영석 대장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두 팔을 걷어붙인다. 박영석 대장의 넘치는 에너지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이다.

바다가재를 직접 잡을 수 있는 웨일 베이

박영석 대장이 보신이 필요한 우리를 위해 아침 일찍이 간 곳은 얕은 바다 속에 바위가 잔뜩 박힌 웨일 베이(Whale Bay 고래만)라는 곳이다. 아직은 쌀쌀한 아침 바다에 뛰어드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그는 몸에 꽉 끼는 잠수복을 입고 오리발을 신는다. 침을 뱉어 잠수경에 김이 서리지 않게 하는 손길이 능숙하다. 해변에서 뒤로 걸어 들어가다가 허리춤이 물에 잠기자 수영을 하더니 이내 물속으로 들어가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봉주 형님이 "이런 평범해 보이는 바다 속에 정말 바다가재가 있을까?"라고 묻자, 박대장의 근성을 잘 아는 허영만 화백이 정답을 내 놓는다. "여기가 목욕탕만 아니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 올걸?"

잔잔한 수평선을 보며 깜박 잠에 빠지려던 순간 박영석 대장의 실루엣이 물 밖으로 나왔다. 박영석 대장의 오른손에는 붉은색의 커다란 바다가재 한 마리가 들려 있다. 그 후로도 산소통에 산소가 없어질 때까지 박영석 대장은 몇 번이고 물속을 들락거렸다. 나올 때마다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산물이 바구니에 소담스럽게 누워 있다. 바다가재의 머리통을 칼등으로 때려 기절 시킨 후에 배를 가르고 살을 발라 껍데기 속에 올리자 훌륭한 회가 몇 접시 만들어졌다. 소라, 성게, 전복과 바다가재의 깔끔한 맛 속에도 도는 새우처럼 세련된 단맛에 대여섯 마리의 바다가재 회가 순식간에 없어졌다. 우리가 잡은 바다가재의 몸통 부분과 남은 전복들은 등산용 버너 위에서 매운탕으로 바뀌었다.

뉴질랜드에서 바다가재를 잡은 것은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벼운 잠수 장비와 함께 바위가 많은 바다 속에 들어가서 바위틈을 뒤지다 보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바위틈에 있는 바다가재를 작살이나 총 등으로 잡으면 불법이다. 바다가재가 상처를 입은 채로 돌 틈에서 죽어버리기 때문에 반드시 손이나 끈을 이용해서 산 채로 잡아야 한다. 만약 법규를 어기면 꽤 많은 액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뉴질랜드 수산업체들이 최근 바다가재의 고통을 최소화하여 죽이는 법을 홍보할 만큼 뉴질랜드에서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만, 결코 동물의 권리가 사람보다 앞서는 추한 경우는 없다. 뉴질랜드의 바다가재는 캐나다 등의 북미산과는 달리 앞발에 집게가 없고 몸통에 살이 많은 데다가 쫄깃해서 전 세계의 고급 바다가재 시장에서 인기가 좋다. 청정한 뉴질랜드 바다에서 잡힌 대부분의 바다가재는 미국이나 유럽으로 공수되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요리로 변신하게 된다.


바다가재 친절하게 죽이는 법?

바다가재는 매우 원시적인 생명체여서 뇌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어느 한 곳(머리 쪽일지라도)을 칼로 푹~ 찌른다고 즉시 죽지 않는다. 일반적인 의견으로는 끓는 물에 넣기 전에 냉동실이나 얼음물에 넣어 기절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얼어서 아무 감각이 없고 움직이지 못할 때 끓는 물이 담긴 냄비에 15초간 넣을 것. 바다가재가 냄비에서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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