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얼룩진 사자의 산 시에라레온(Ⅰ)

피로 얼룩진 사자의 산 시에라레온(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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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월 21일
시에라레온 행 항공권을 열어 보니 여러 장의 티켓이 들어 있다.

최종 목적지 시에라레온까지 가는데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S'자로 그리면서 가로질러 내려가는 길고 복잡한 여정이다.

인천 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저녁 무렵에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공항 근처에서 일박을 하고 새벽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이탈리아 반도를 지나 지중해를 넘어 북아프리카 이집트를 거쳐 홍해 바다를 따라 계속해서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첫 번째 목적지 에리트리아
비행기는 지금까지도 형제의 나라 이디오피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에리트리아의 수도 아스마라 공항에 도착했다. 이 곳에도 유엔 평화유지 미션이 있기 때문에 동부 아프리카 지역을 담당하는 지형정보관련 담당자들과 회의를 가져야 했다.

11일 동안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 경유지인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로 향했다. 모두 이웃 나라들이지만 서로 전쟁을 치르고 있거나 직항 노선이 없기 때문에 여러 나라를 경유해서 가야만 한다. 에리트리아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이디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로 가기 위해서 수단의 수도 카툼 공항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무덥고 건조한 사막의 모래바람이 비행기 안까지 스며들어온다.

말로만 듣던 이디오피아
이 나라는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함께 한국전에 유엔군으로 참전한 나라이다. 전투 병력 보병 1개 대대 1,271명을 파견시켜 젊은 피를 한국땅에 바치게 했다. 하지만 오늘의 이디오피아의 현실은 말할 수 없이 참혹하다. 이웃나라 에리트리아와의 오랜 전쟁과 계속되는 가뭄, 질병과 굶주림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 몰아가고 있다.

다음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서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7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시내를 한 번 둘러보고 싶었지만 짐이 너무 많아서 공항 건물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 아직도 한겨울인 2월 초인데 이곳의 공항은 매우 후덥지근하고 한국의 70년대 시골의 시외버스터미널처럼 매우 번잡하다. 냉방 시설은 전혀 없고 대형 선풍기가 시끄러운 소음을 내면서 신나게 돌아가지만 불쾌한 더운 바람만 계속 뿜어내고 있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일박을 하고 다시 비행을 계속했다.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를 내려다 보며 아프리카 대륙을 계속 횡단하여 경제적으로는 아직도 빈곤하지만 그나마 정치적으로 안정된 나라,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의 나라인 가나의 수도 아크라 공항에 도착했다.

건조한 사막 기후의 동부 아프리카와는 달리 습도가 높으면서 덥기 때문에 후덥지근하게 느껴지는 날씨는 내가 있는 곳이 서부 아프리카 땅임을 실감나게 한다. 수도 아크라에서 하루를 머물면서 시내를 대충 둘러보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시에라레온 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 집을 떠나 왔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그저 비행기를 기다리고 타는 것을 반복하면서 그렇게 나는 나의 목적지 시에라레온을 향해 가고 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안내 방송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방송 장비가 좋지 않아서 일까 내 귀에 들리는 가나식 영어 발음은 그저 코맹맹이 소리로만 들린다. 비행기가 출발할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게이트를 오픈 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알아보니 내가 탈 비행기가 약 5시간을 연착한다는 것이다. 50분도 아닌 5시간을. . .

시간을 보내기가 너무 힘들다. 짐을 전부 보내서 읽을 책 만한 도 없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다. 얼음을 넣은 시원한 음료수 한 잔 생각이 절로 나지만 이 곳에는 아무 것도 없다. 머리 속이 멍멍해진다.

"신사, 숙녀 여러분! 곧 이 비행기는 시에라레온 룽기 국제 공항에 도착되겠습니다." 기장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기내의 조그만 창 너머로 햇빛에 반사되어 거울처럼 비춰지는 양철지붕을 얹어 놓은 조그만 토담집들이, 그 사이사이로 무성한 망고 나무들이 보이고, 하얀 모래 사장의 해안선을 끼고 만들어진 조그마한 공항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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