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Cinderella Complex(신데렐라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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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005. 14:48
코리아타임즈 ()
A fairy tale, as distinct from an animal story, is a serious tale with a human hero.(동화는 동물이야기-우화와는 달리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진지한 이야기다.) At the beginning, its hero is either socially humble or looked down upon as being stupid. (처음에는,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비천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으로 멸시를 받는다.) However, at the end, he has surprised everyone by showing his heroism and winning fame and love. (그러나 마지막에는, 주인공은 영웅적인 행위를 보여주고 명성과 사랑을 얻음으로써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Though finally he succeeds, he has to go through a struggle in which his success is in doubt. (비록 마지막에는 성공을 거두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성공이 어렵게만 여겨지는 고난을 겪어야만 한다.)
In many cases, were he not helped by friendly powers, he would fail.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호적인 힘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그는 실패할 것이다.) That is, in addition to his own powers, he needs luck. (즉, 자신의 능력 이외에도 그는 행운을 필요로 한다.) The tale ends with the establishment of justice: the good are rewarded and the evil are punished. (이야기는 정의를 정립시키면서 끝을 맺는다 : 즉 선은 보상받고 악은 벌을 받는다.)
이러한 작품 전개 구조는 동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꼭 동화처럼 권선징악으로 끝을 맺지는 않지만, 많은 영화나 TV 드라마도 동화와 비슷한 이야기 전개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젊은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최근의 한국 TV 드라마들은. 동화나 TV 드라마가 작품으로서 완성도를 갖느냐 하는 것은, 주인공이 고난을 이겨나가는 과정과, friendly powers(우호적인 힘들), 즉 luck(행운)의 작품 속 장치가 이야기 전개 속에서 얼마나 설득력있게 그 시대 사람들에게 보여지느냐 하는 데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지루하고 때로는 암울한 현실과는 다른 이야기 전개 속에 자신을 투영시키면서 기쁨을 얻고자 하기 때문에 동화나 소설을 읽고 TV 드라마를 본다.
물론, realism의 렌즈를 현실에 들이대면서 써나가면 드라마 속의 삶도 척박하고 가슴쓰리도록 우울하고 때로는 비극적일 수도 있다. ‘바보같은 사랑’과 ‘네멋대로 해라’와 같은 빼어난 작품들처럼. 그러나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답답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싶어 TV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파리의 연인’이나 ‘내 이름은 김삼순’은 대중들의 그러한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주었다는 면에서 그대로 좋을 수 있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서 성공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friendly powers’에 의해서 인생이 역전 되기만을 바라는 심리상태를 심리학자들은 Cinderella Complex라 부른다. 요즈음 한국 TV들은 이러한 대중적 Cinderella Complex에 영합하는 단선적 구조만을 가지고 많은 드라마를 찍어내다 작품성은 물론 시청률면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Cinderella Complex는 핵가족에서 자녀들을 응석받이로 키우기 때문에 양산되는 이른바 ‘왕자병’, ‘공주병’과는 다른 현상이다. 공주병이나 왕자병은 보통은 나이를 들어가면서 객관적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의 냉엄한 벽에 부딪히며 차츰 치유될 수 밖에 없지만, 오늘 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Cinderella Complex를 갖게 되는 현상은 경제 사회적 신분계층이 점차 견고하게 굳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한 부작용이기 때문에 사회 병리학적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되고 있다.
이른 바 ‘American Dream’의 나라라고 불리며 많은 이민자들을 끌어 들였던 미국도 이제는 더 이상, 비록 육체 노동일지라도 자신만 열심히 일하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그런 경제 사회 구조가 아니라고 한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 그리고 일본과 한국까지도 이제는 더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올’수 있는 그런 사회가 아니라 부와 사회적 신분의 벽이 점차 화석화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개천에서 태어난 젊음들은 현실의 난관을 직면하고 싸우며 극복하여 스스로 용이 되기를 포기하고, 일찌감치 동화 속 껍질 속으로 들어가 백마 탄 왕자나 BMW를 탄 공주가 자기 앞에 나타나기만을 꿈꾸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비평가이면서 시인이었던 Charles Perrault(1628-1703)가 절대적 신분의 벽이 확고했던 17세기에 하층민들에게도 이른바 꿈을 주기 위해, 아니면 허망한 꿈만을 꾸도록 유도하기위해 썼던 동화 Cinderella가, 산업화 시대가 끝나고 정보화 세계화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 모순은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참으로 쓰드름하다. 참으로 Cinderella의 생명력은 길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