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화백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젖은 번지를 하게 되면 무료로 티셔츠를 준다는 직원의 단 한마디에 젖은 번지를 선택했다. 젖은 번지는 뛰어내리고 나서 몸이 물속으로 '첨벙' 들어가는 진짜 번지점프이다. 봉주 형님이 남길 말 없냐며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에 부조금 낸다는 기분으로 점프 비용을 계산했고, 곧이어 허영만 화백이 조금은 으스스한 각서(상해나 사고가 나도 번지점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사인을 했다. 그러면서도 '절대' 안전하니까 걱정 말라고 한다. '절대' 안전하다면 이런 용지는 필요 없을 텐데....
번지 점프대로 올라가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름과 체중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후에 발목에만 간단한 끈을 벨크(일명 찍찍이)로 붙여서 고정하면 준비가 끝이다. 점프대로 향하는 허영만 화백의 긴장과 걱정이 뒤섞여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하다. 번지점프는 점프 직전에 그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삶에 대한 본능적인 애착과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감이 머릿속을 몹시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 공포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번지점프를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허영만 화백이 몸을 앞으로 굽혔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넘어가는 찰나가 되면 머릿속에서는 아드레날린이 쏟아져 나오면서 깊은 쾌감이 터져 나온다. 이때부터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방금까지 가지고 있던 고민도, 하다못해 공포감조차도 느낄 여유가 없이 지구의 중심을 향해 떨어지게 된다. '중력 가속도=9.8m/sec²'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몸으로 느끼며 물을 향해 질주하는 과정은 의외로 길고도 평화롭다. 엄청난 가속과 함께 좁아지는 시야, 얼굴에 몰리는 혈액과 함께 콧속으로 들이닥치는 차가운 물. 그리고 줄의 탄력으로 다시 튀어 올라갈 때 느끼는 살아 있다는 환희.
번지점프를 해보면 자신이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다. 번지점프 직후에 느끼는 까닭 모를 즐거움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즐거운 것인지를 깊이 느끼게 해준다. 허영만 화백 역시 상기된 얼굴로 연신 싱글벙글한다. 아침의 걱정스러운 얼굴보다 30년은 젊어 보였다.
통가리로 국립공원의 심장부 화카파파 빌리지
타우포는 청명한 무공해 도시다. 내일은 북섬 최고봉인 루아페후 산(2797미터)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루아페후 산 바로 밑에 있는 화카파파 빌리지(Whakapapa Village) 근처에 가기로 했다. 루아페후산은 거친 화산이다. 전 세계에 걸쳐 많은 화산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인 루아페후 산은 10년 전에도 이미 두차례나 폭발을 한 적이 있다. 2007년 9월에도 화산이 폭발해 부상자가 생기기도 했다. 루아페후 산은 원래 삼각형의 일반적인 활화산 모양이었지만, 산의 정상부가 모두 터져나가 버리는 바람에 왕관형이 되어버렸다. 수백 미터에 이르는 산 정상부가 없어져서 높이가 2797미터에 불과하지만, 산이 워낙 거대해서 4000미터급 산의 위용과 늠름함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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