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박사를 만난 것은 1990년 7월 루브르 박물관에서였다.
우연히 마주쳤다는 게 바른 표현이겠는데 호킹박사는 그해 한국 방문을 앞두고 블랙홀의 이론과 함께 매스콤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되었기에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스티븐 호킹’-그가 누구인가? 영국 태생의 세계적 석학으로 블랙홀(Black Hole)의 권위자이며 ‘시간과 우주의 생성, 역사에 관한 금세기 최고의 이론물리학자가 아니던가! 어쨌든 블랙홀과 빅뱅만큼이나 신비스런 그를 만난 것 자체가 내게는 행운이었다.
그런데 ‘근위축성 측색경화증’(소위‘루 게릭병’)으로 전신마비상태에서 수행원들에 둘러싸여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는 참으로 안타깝고 불쌍해 보였고, 주위의 파리지앵들이나 관관객들조차 그에게 관심이 없는듯 했지만 나로서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의 말은 ‘컴퓨터 합성음으로만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은채. 어쨌든 그는 고개가 기울어진 상태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전혀 표정 변화가 없었고, 어떤 초능력이나 카리스마보다는 ‘손가락 두 개 밖에 움직일 수 없는’ 특급장애인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을 뿐이었다.
요새 오클랜드 전역에 도둑이 극성이란다. 차 도둑은 기본이고, 사람이 있어도 태연히 들어가는가 하면, 시큐리티 장치를 하는 양 버젓이 사다리를 타고 2층 창문으로 들어와 훔쳐가는 간 큰 놈들까지 생겨났다니 과연 이곳이 지상의 낙원인지, 잘 모르고 찾아온 쪼잔한 동네인지 분간이 안간다. 그러다보니 “정말 가난한 사람은 나눌수 있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는데 가뜩이나 어려운 교민사회가 자꾸 그렇게 되어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어둡다. 최근에는 남의 초대를 받아도 부인들이 되도록 안가려고 한다는데 ‘다음번에 답례로 초대할 일이 부담스러워서’라니--
‘남의 떡이 커 보이는( The grass is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 정착초기의 뉴질랜드교민사회는 자칫 상대적 우월감 내지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기 십상이다. 그래서 누구네가 식당을 개업했다하면 축하하는 마음과 함께 “나는 뭐하고 있나” 자문하기도 하고, 어느집 딸이 미국동부 유명대에 특차합격했다 하면 괜히 주눅이 들기도 하고, 누구누구가 동업했다하면 한편으로 격려 하면서도 “나를 빼고 자기네 끼리만?”하는 아쉬움과 섭섭함이 교차되는 것이 ‘어쩔수 없는 슬픈 우리 자화상’이다.
이럴 때 좀 여유 있는 사람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미덕을 발휘해서 장학금도 내고, 노인복지재단도 만들고 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최근 미국의 최고 재벌들인 빌게이츠나 워렌버핏, 록펠러2세등은 참으로 멋진 본보기를 보여 준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도 인식의 전환을 해야하지 않겠나 싶다. 요새는 한국식품점을 비롯한 교민 업체들도 양질의 서비스만을 제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젠 유통기한이 약간 지났어도 먹어줄 마음이 되어야하고 좀 친절이 아쉬워도 적자에서 오는 피곤함으로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매주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지들도 찌라시라고 매도하기보다 고맙게 여겨야 할 것이다. 또한 키위라고 경원하지도, 중국인이라고 경계하지도, 인도사람이라고 무시하지도 않아야 하고 특히 교민끼리 서로 상처주는 말은 삼가야 하리라 생각된다.
요즘 교민사회가 어렵고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스티븐 호킹을 보면 절망이라는 단어조차 오히려 사치스러울 수 있다. 수행원이 없으면 단 한발짝도 옮길 수 없고, 말을 하기도, 심지어 하루를 살기조차 어려운 한계상황에서도 그는 초인적인 능력으로 연구활동을 지속함으로써 천체물리학의 독보적 존재로 인류문명에 공헌하고 있다. 그가 쓴 ‘A Brief History of Time’은 우주론 관련 최고 인기서적이 되었고 세계 20개국에서 1천만권이상이나 팔려 나갔다.
올해 64살이 된 그는 여전히 휠체어를 탄채 세계를 누비고 있는데 지난 6월 13일에는 홍콩에서 “각종 재난으로 지구 멸망 위험이 커지고 있으며 만일 인간이 앞으로 100년동안 서로 살생하지 않는다면 독자적인 우주정착촌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앞으로 20년 이내에 달에, 40년 이내에는 화성에 영구기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골프장에서 홀인원하는 경우는 정상적으로 들어가기보다 불규칙바운드나 다른 지형지물에 맞고 튀어 들어 가는 수가 더 많다고 한다. 뻔히 보이는 파3홀에서 볼을 한번에 구멍속에 넣기도 극히 어려운 일인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한대 거리의 블랙홀을 향해 공을 쳐대는 스티븐 호킹-그를 통해 온 인류는 삶의 해법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스티븐 호킹이나 워렌 버핏이나 록펠러2세나, 유일한이나 모두 마음이 가난한 진짜 부자들이다.
최근 베이징에서 호킹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직도 이뤄내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꿈을 잃으면 죽은 것과 다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