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 바다이야기

[340] 바다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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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이야기’는 쓰나미이다.

수년전 아메리칸컵 대회에서 2연패한 ‘팀뉴질랜드’가 퀸스트리트를 시가행진 할 때 수십만 인파가 몰려 최고의 축제분위기를 연출했었다. 국민소득이 2만불을 넘어서면 선진국이라하고, 선진국 국민은 바다를 즐기며, 바다와 친숙한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뉴질랜드는 섬나라이고 국민소득 2만불을 넘은 선진국답게 바다와 더불어 살면서 파도타기, 요트대회등 온갖 해양스포츠를 즐긴다. 그리고 고래 살리기, 수족자원보호등 바다이야기가 끊임 없이 뉴스를 장식한다. 지난 4일 호주의 ‘악어 사냥꾼’이자 환경보호론자인 ‘스티브 어윈’도 바다에서 ‘Animal Planet’의 프로그램을 찍다가 가오리의 독침에 맞아 안타깝게 절명했다.  

그런데 갑짜기 등장한 다른 ‘바다이야기’가 한국을 강타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한강에서 파란을 일으킨 것으로 부족해서 파장 영역을 바다로까지 확대 시킨 것일까? 동서고금을 통해 도박에의 유혹은 그 위력이 대단해서 인간을 황폐화 시키고 사회와 국가를 무너뜨린다. 한국인은 문화예술적 감성이 뛰어난 반면 “못 먹어도 고”하는 식으로 지극히 감정적이고 집착력이 강해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한국은 월드컵공화국, 노래방공화국등 별명이 많기도 하다. 이런 국민성에 바다이야기가 보이지 않는 손들에 의해 독버섯처럼 파고 들었으니 초등학생까지도 폭풍에 휘말릴 정도로 ‘도박공화국’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폭풍은 그 속성상 휩쓸고 지나가야만 끝이나고 그래서 더 두렵다.

‘이방인’과 함께 ‘알베르토 까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페스트’는 이렇게 시작된다.  
<의사 ‘베르나르’는 진찰실에서 나가다가 층계 한 가운데서 하마터면 죽은 쥐를 밟을 뻔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 밀어 치우고 한 길까지 갔다가 ‘그 쥐가 평소에 없던 장소에 있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돌아와 수위에게 주의를 준다. 수위는 거기에는 절대 쥐가 있을 수 없고, 누군가가 갖다 놓았을 거라고 주장한다. 층계위의 쥐는 어떤 ‘징조’였던 것이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균형을 잃고 방황하거나,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쥐들이 한 마리에서 두 마리, 다섯 마리, 열 마리 그리고 100마리를 넘어 서고 드디어 쥐들의 숫자 만큼 사람들이 죽어 가면서 삽시간에 도시를 폐허화시킨다.> 바다이야기가 처음 허가 될 때 이미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문화관광부와 국회 문광위와 영등위가 얽히고 설킨데다 로비와 권력과 금력이 가미 되면서 페스트처럼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세계 10대 강국까지 올라 갔던 한국 경제는 GDP(국민총생산) 규모에서 2004년 인도에 10위 자리를 물려 주더니 올해는 브라질에 11위 자리마저 내주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한 칼러로 등장한 ‘룰라’대통령은 치밀한 경제 구조와 조세 감면 정책등 실용주의 노선을 견지하면서 기업인들을 브레인으로 대거 등용하는 등 탁월한 경제대통령으로 변신하였고 브라질을 15위에서 4단계나 수직 상승시키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화가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8월 31일 KBS와의 특별 대담에서 ‘비젼 2030’이라는 찬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2030이후에는 현재의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력을 갖추고 교육, 의료, 복지, 노후등 전반에 걸쳐 국가가 보장해 주는 태평성대를 약속한다. 문제는 그런 황금빛 목표를 보면서 기뻐하는 국민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거기에는 ‘1100조원이라는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기도 하지만 40년 후의 ‘무늬만 부자’보다는 현재의 적당한 배부름과 편한 잠자리가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바다이야기’는 ‘치밀한 국가정책 부재’와 ‘도덕 불감증’이 빚어낸 ‘총체적 부정비빔밥’이다.
< 르네상스문화를 대표하는 ‘네오나르도 다 빈치’는 ‘산타마리아 그라치에’ 성당의 벽화 ‘최후의 만찬’을 거의 완성했을 무렵에도 ‘그리스도’와 ‘유다’의 얼굴을 한 동안 비워 두었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모습과 배신자 유다의 얼굴을 묘사하기가 참으로 어려워서였다. 마지막까지 유다를 닮은 모습을 찾기 위해 재판소와 감옥으로 흉악범을 만나러 돌아다녔다. 마침내 그림이 완성 되자 모두가 놀라는 세계적 걸작이 되었다. 그가 또하나의 불후의 명작 ‘모나리자’를 그리는 데도 3년이나 걸렸다. 하도 오래 걸리다 보니 그 사이에 27세의 모델인 ‘리자 부인’이 남편과 함께 ‘칼라브리아’로 여행 도중 뜻밖의 병에 걸려 죽게 된다.> 그래서 ‘모나리자’는 미완성 그림인 셈이다. 그럼에도 영원한 미소로 살아 남는 것은 열정과 집념이 만들어 낸 평안과 행복’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한폭의 그림을 그리는 데도 사명감이 그러하거늘 한 국가, 한 민족을 이끄는 국가 정책의 중차대함을 어찌 다 말 할 수 있겠는가!